
작성일 : 2019-08-29 12:50
1491(성종 22)~1570(선조 3) 자(字)는 운경(雲卿), 호(號)는 호음(湖陰), 부사(府使) 광보(光輔)의 아들. 영의정(領議政) 광필(光弼)의 조카. 1509년(중종 4) 생원 (生員) 이 되고, 이해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1514년 사가 독서(賜暇讀書)하고, 1516년 황해도 도사(黃海道都事)로서 문과중시 (文科重試)에 장원, 사간(司諫)을 거쳐, 1523년 부제학(副提學)이 되 고, 1534년 동지사(冬至使)로서 명나라에다녀왔다.
1542년 예조 판서(禮曹判書)에 승진, 1544년 공조 판서로 다시 동 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1554년(명종 9) 대제학(大提學)이 되 었으나 1558년 과거(科擧)의 시험문제를 응시자(應試者) 신사헌(愼思 獻)에게 누설하여 파직되었다. 이해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 복직, 이어 공조 판서(工曹判書)가 되었다가, 1562년 다시 판중추부사에 전 임, 이듬해 이 양(李 樑)이 제거될 때 그 일당이었다 하여 삭직(削 職)당했다. 시문(詩文)․음률(音律)에 뛰어났고 글씨에도 능했으나 탐 학(貪學)하다는 비난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