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9 12:07
?~1476(성종 7) 자(字)는 묘부(畝夫), 호(號)는 오로재(吾老齋), 시호는 양평(襄平), 좌찬성(左贊成) 구(矩)의 손자. 1442년(세종 24) 무과(武科)에 급제, 1453년(단종 1) 이징옥(李澄玉)의 난 때 종성 판관(種城判官)으로 이를 주살(誅殺), 1등공신에 책록되고, 1461년(세조 7)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에 다시 공을 세워 적개 3등공신(敵愾三等功臣)으로 동평군(東平君)에 봉해졌으며, 충청도 도절제사(忠淸道都節制使)를 거쳐 1471년(성종 2) 경주부윤(慶州府尹)에 이르렀다. 성주(星州)의 반암사(盤巖祠)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