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8 15:38
1676(숙종 2)~1759(영조 35) 자(字)는 원백(元伯), 호(號)는 겸재(謙齋)․난곡(蘭谷), 부사(府使) 설(渫)의 현손, 시익(時翊)의 아들, 약관(弱冠)에 김창집(金昌集)의 천거로 도화서(圖畵署)의 화원(畵員)이 되고 그 뒤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중국 남화(南畵)에서 출발했으나 30세를 전후하여 한국 산수화(山水畵)의 독자적인 특징을 살린 산수사생(山水寫生)의 진경화(眞景畵)로 전환했고, 여행을 즐겨 금강산(金剛山)등의 전국 명승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심사정(沈師正)․조영석(趙榮祏)과 함께 삼재(三齋)라고 불렸다. 강한 농담(濃淡)의 대조 위에 청색(靑色)을 주조(主調)로 하여 암벽(巖壁)의 면과 질감(質感)을 나타낸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으나 후계자가 없어 그의 화풍은 일대에 그쳤다.
문재(文才)가 없었던 탓으로 다만 서명과 한 두개의 낙관(落款)만 이 화폭 구석에 있을 뿐, 화제(畵題)가 없는 것이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