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8 15:37
1553(명종 8)~? 자(字)는 몽여(夢與), 호(號)는 화곡(禾谷), 시호(諡號)는 충민(忠敏), 장령(掌令) 이주(以周)의 아들, 1573년(선조 6)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77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주서(注書)․ 호조 좌랑(戶曹佐郞) 등을 거쳐 1597년 안동 부사(安東府使)가 되고, 2년 뒤 호조 참의(戶曹參議)로 구관 당상(勾管當上)을 겸직, 이어 대사헌(大司憲)으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후 이조참의(吏曹參議)․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등을 역임했다.
1607년(선조 40)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로 나갔고, 선조가 죽자 이조 참판(吏曹參判)으로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가 되어 「선조실록(宣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했다.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을 거쳐 1611년(광해군 3) 대사헌(大司憲)․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이듬해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를 지내고, 1612년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에 연루, 파직되었으나 혐의가 없어 이듬해 경기도 관찰사에 등용, 다음해 형조 판서(刑曹判書)를 지냈다. 글씨를 잘 썼다. 청주(淸州)의 수락서원(壽樂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