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8 15:36
1536(중종 31)~1592(선조 25) 자(字)는 홍원(弘遠), 호(號)는 병은(病隱). 질(耋)의 아들, 1564년(명종 19)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566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검열(檢閱)이 되고, 이어 형조 정랑(刑曹正郞)으로 춘추관 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겸하여「명종실록(明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했다.
1574년(선조 7) 홍문관(弘文館)에 등용되고, 헌납(獻納)을 거쳐 1577년 부수찬(副修撰)으로 평안도 경차관(平安道敬差官)이 되어 전염병이 휩쓸고 있는 도내를 순방하며 구호한 뒤 1581년 수찬(修撰)이 되었다.
2년 후 사간(司諫)이 되어 이이(李 珥)가 3사(司)의 탄핵을 받자, 항소(抗訴)하여 그 누명을 벗게 했고, 1587년(선조 20)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로 재직 중 백성의 원한을 쌓고 허락없이 한양에 들어왔다는 죄로 한때 삭직되었다.
이듬해 도승지(都承旨)가 되고 전주 부윤(全州府尹)을 거쳐 1591년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 참의(兵曹參議)로 왕을 평양에 호종(扈從), 다시 세자(世子)를 따라 강계(江界)로 가던 도중 맹산(孟山)에서 죽었다.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