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3 14:45
1318(충숙왕 5)~1375(우왕 1) 자(字)는 맹경(孟耕), 호(號)는 야은(埜隱). 시호(諡號)는 문명(文明), 충혜왕(忠惠王)때 문과(文科)에 급제, 제주 사록(濟州司錄)․전교시 교감(典校寺校勘)을 지냈으며, 원나라의 정동향시(征東鄕試)에 급제했다.
1347년(충목왕 3) 정치도감(整治都監)의 정치관(整治官)으로서 백문보(白文寶)와 함께 기삼만(奇三萬 : 기황후의 족제)을 옥사(獄死)케 하여 원나라 사신으로부터 국문(鞫問)을 당했으며, 1357년(공민왕 6) 기거 사인(起居舍人)으로서 간의(諫議) 이 색(李穡), 사간(司諫) 이보림(李寶林)․정 추(鄭樞) 등과 함께 염철 별감(鹽鐵別監)의 폐단을 상소하고, 1361년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를 거쳐 전라도 안찰사(全羅道按察使)로 나갔다.
같은해 홍건적의 난 때 대가(大駕)를 호종하여 1363년 2등 공신에 좌상시(左常侍)가 되고, 이듬해 감찰대부(監察大夫)로서 사신이 되어 원나라에 가서 황태자에게 예물(禮物)을 바치고 돌아와서 계림윤(鷄林尹)․밀직제학(密直提學)이 되었다.
1367년에 경상도 도순문사(慶尙道都巡問使)가 되고, 1371년 동지공거(同知貢擧)․대사헌(大司憲)을 역임, 1373년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서 강녕부원대군(江寧府院大君 : 우왕)의 사부(師傅)가 되었으며, 이듬해 개성 부사(開城府使)․문하 평리(門下評理)등을 역임, 추충찬 화보리공신(推忠贊化輔理功臣)이 되었다.
1375년(우왕 1) 간관(諫官) 이 첨(李 詹), 전백영(全伯英)등이 북원(北元)의 배척과 이인임(李仁任)의 주살(誅殺)을 청하였다가 투옥된 사건에 연루, 장류(杖流) 도중에 장독(杖毒)으로 죽었다. 장흥(長興)의 감호사(鑑湖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