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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장씨 金用系] 장건상(張建相)

작성일 : 2019-07-26 14:42

자(字)는 찬성(贊成)이고 호(號)는 소해(宵海)이며 참봉(參奉) 장기상(張箕相)의 아들이다. 1882년 12월 19일 인동에서 출생하여 부산에 이주(移住)하여 일본(日本)으로 건너가 와세다(早稻田)대학 정치학과(政治學科)에 입학(入學) 수학(修學)하다가 중퇴(中退)하고 미국 인디아나주 발프레이조대학 법학(法學)과에 입학(入學)하여 1912년 졸업(卒業) 후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김규식(金奎植)을 만나 동제사(同濟社)에 가담(加擔)하여 동립운동(同)의 첫발을 디뎠다. 임시정부(臨時政府) 외무위원(外務委員)으로 활동하다가 1921년 소련 이루츠크에서 고려(高麗) 공산당(共産黨)에 가입(加入)하여 활동(活動)하다가 임시정부(臨時政府)의 의열단(義烈團) 고문(顧問)으로 일본인(日本人)을 살상(殺傷)하기 위한 폭탄(爆彈) 제조(製造)를 지휘(指揮)하였으며 일제(日帝)에 체포(逮捕)되어 상해주재일본영사관과 부산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굴복(屈伏)하지 않고 기소유예(起訴猶豫)로 석방(釋放)되었다. 그 후 비밀리(秘密裏)에 탈출(脫出)하여 중칭(重慶)의 임시정부(臨時政府) 간부(幹部)로 활동하다가 귀국(歸國)하여 여운형(呂運亨)의 노선(路線)을 지지(支持)하였다. 해방(解放) 후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國會議員)으로 부산에서 무소속(無所屬)으로 출마(出馬)하여 전국4위의 표수를 얻어 당선되었다. 1957년 11월 박정호 간첩(間諜)사건(事件)에 연루(連累)되어 구속(拘束)되었으나 무죄(無罪)로 석방(釋放)되고 5.16 직후 구속(拘束)되었으나 박정희(朴正熙)의 배려(配慮)로 병(病) 보석(保釋)로 석방(釋放)되었다. 초대 내각 구성(構成) 시 이승만(李承晩)이 입각(入閣)을 요청(要請)했으나 남한(南韓)만의 단독(單獨) 정부수립(政府樹立)으로 남북(南北)분단(分斷)의 우려(憂慮)가 있으므로 거절(拒絶)하였다. 1974년 5월 14일 서울의 오두막집에서 가난에 찌든 생활을 하다가 92세로 서거(逝去)하였다. 분단시대에 한 복판에 선 건국(建國) 초기(初期)의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이며 사상가(思想家)이다. 부산 용두산 공원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