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희(張炳熙)의 아들이다. 배제둥학교를 졸업하고 도일(渡日)하여 일본대학에 입학 의열단원(義烈團員)에 가입(加入) 단원 최탄형(崔坦亨) 동지와 함께 임시정부 밀령(密令)으로 재일동포 및 유학생에게 독립사상을 고취(鼓吹)하고 “말하는 침묵(沈黙)이란” 애국(愛國)시집(詩集)을 배부(配付)하였으며 애국가요(愛國歌謠) “명사십리(明沙十里)”를 작사(作詞)하여 널리 홍보(弘報)하고 “민족(民族)이여 일어나라” 는 잡지(雜誌)를 발간(發刊)하여 날카로운 필봉(筆鋒)을 휘둘렀으며 민족정신(民族精神)은 국내외(國內外)에 선양(宣揚)할 목적으로 항일 영화 “홍주머니” 시나리오를 창작(創作)하여 영화(映畵)를 제작하려다가 계획(計劃)이 누설(漏泄)되어 1939년 일경(日警)에 체포(逮捕)되어 혹독(酷毒)한 고문(拷問)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대구감옥에서 옥고(獄苦) 중(仲) 고문(拷問)의 여독(餘毒)으로 1939년 6월 25일 25세로 일생(一生)을 마감(磨勘)했다. 조국광복(祖國光復)과 더불어 선생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1968년 3월 1일 독립유공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고 1980년 선산(善山) 문화원(文化院)에서 국민의 뜻을 모아 선산읍 노타리에 기념비(記念碑)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