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명(初名)은 응표(膺杓)이고 자(字)는 응칠(應七)이며 호(號)는 운고(運皐)이다. 장봉상(張鳳祥)의 차자(次子)로 증(贈)이조(吏曹) 참판(參判) 장빈(張賓)에게 출계(出系)했다. 헌종 15년 서기 1849년 정식 문과에 급제하여 동부승지(同副承旨) 현풍(玄風) 현감(縣監) 북청(北靑) 현감(縣監) 병조(兵曹) 및 공조(工曹)참의(參議)를 역임하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형조(刑曹)참판(參判) 중추부(中樞府) 동지사(同知事)를 역임했다.북청(北靑)현감(縣監) 재임(在任) 시(時) 선정(善政)을 배풀어 읍민(邑民)들이 북청(北靑)향교(鄕校)와 만경제(萬景齊)에 흥학비(興學碑)세우고 우레 거사비(去思碑)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