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명(初名)은 석휴(錫烋)이고 자(字)는 양(揚)중(仲)이고 호(號)는 소정(小亭)이며 승지(承旨) 장석유(張錫裕)의 아우이다. 고종(高宗) 2년 식년(式年) 문과(文科) 병과(丙科)에 등과(登科)하여 승문원(承文院) 부정자(副正字), 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을 거쳐 고종 8년 서기 1871년 성현도찰방(省峴道察訪)이 되었다. 그 후 정언(正言) 수찬(修撰) 교리(校理) 사간(司諫), 좌통례(左通禮) 등을 역임하고 고종 20년 서기 1883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도정(都正) 부호군(副護軍) 호조(戶曹)참의(參議) 우부승지(右副承旨)를 역임하였다. 성형도찰방시 선정(善政)을 배풀어 당시 고을 사람들이 세운 영세(永世)불망비(不忘碑)지가 대구 수성구 범물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