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7-25 12:13
자(字)는 덕회(德晦)이고 호(號)는여(旅)헌(軒)이며. 증(贈) 이조(吏曹)판서(判書) 장열(張烈)의 아들이다. 도일원론(道一元論)을 창시한 조선조의 성리학자(性理學者)이다. 선조 28년 서기1595년 학덕(學德)으로 천거(薦擧)되어 보은현감이 되었으나 이듬해 시토했다. 그 후 형조좌랑 순천군수 합천군수 선공감 첨정(僉正)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 장령(掌令) 집의(執義) 공조참의 이조참판 대사헌 우참찬 지중추부사 등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평생동안 1년 미만 사환(仕宦)에 있었으며 오로지 학문연구에 전념하였다. 인조2년 이괄의 난 후에 부름을 받아 왕에게 정치에 대한 건의를 하였고 1936년 병자호란 때에는 경상(慶尙)우도(右道) 호소사(號召使)로 각 주군현(州郡縣)에 격문(檄文)을 보내 근왕병을 일으켰으며 이듬해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동해안 입암(立巖:영일군 입암면 중장리, 당시는 역천군에 속함)에 들어가 은둔하여 후진양성과 학문연구에 정수(精修)하다가 그해 9월 7일 향수(享壽) 84세로 졸(卒)하였다. 그가 주장한 이론은 덕(德)은 도의 지선한 것이라 정의하고 이기설(理氣說)에 있어서 이(理)와 기(氣)는 서로 체용(體用)될 뿐이므로 경(經)과 위(緯)로 나누어 해석(解釋)해야한다는 것과 의학(醫學)에도 조예(造詣)가 깊었다. 효종8년에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고 시호(諡號)는 문강(文)康)이다. 인동의 동락(東洛)서원(書院)과 선산의 여헌영당(旅軒影堂)에 주향(主享)되고 선산의 금오서원(金烏書院)과 성주의 천곡서원(川谷書院), 영일의 입암서원(立巖書院), 청송의 송학서원(松鶴書院), 영천의 임고서원(臨皐書院), 의성(義城)의 빙계서원(氷溪書院) 등에 배향(配享)되었다.
저서(著書)로 여헌문집(旅軒文集) 성리설(性理說) 역학도설(易學圖說) 역괘총설 급구설(易卦總說及究說) 만학요회(晩學要會) 도서발휘(圖書發揮) 등 다수(多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