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2-09 13:04 수정일 : 2019-06-30 17:30
1570(선조 3) - 1651(효종 2) 자는 이신(而信), 호는 우은(愚隱), 두문(杜門). 파조 국암공의 손자, 자락재 거경(居敬)의 아들, 홍문관 부교리 민중(敏中)의 쌍생아 아우.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과 한강 정구(鄭述)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604년(선조 37) 통덕랑(通德郞)을 제수 받고 벼슬길에 나갔으며, 1612년(광해군 4) 진사시에 합격했다. 이듬해 성균관 유생들과 영창대군(永昌大君)을 구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정거(停擧) 의 명을 받았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亂) 때 공주(公州)로 어가(御駕)를 수행하였고, 환궁해서 조산대부(朝散大夫)로 승품되었다. 1626 년(인조 4) 경상도사(慶尙都事)에 제수되고, 1633년(인조 11) 별시문과에 급제, 성균관 전적(典籍) 둥 여러 관직을 거쳐 좌부승지(左副承旨) 겸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을 지내고, 외직으로 나가 덕원부사(德源府使)가 되었다. 그 후에도 좌승지(左承旨) 등을 거쳐 연안도호부사(延安都護府使)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