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2-09 12:51 수정일 : 2019-06-30 21:16
(權克悌) : 1477(성종 8) - ? 자는 사경(士敬), 호는 오헌(梧軒). 익헌공 종손(宗孫)의 아들, 국암 극효(克孝)의 아우다. 한훤 김굉필의 문하에 서 성리학(性理學)을 수학했다. 1507년(중종 2) 안당(安瑭)의 천거로 금오랑(金吾郞)이 되고, 이듬해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승품돼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이 되었다. 이때 김안로(金安老)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상황을 논고(論告)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홍원군수(洪原郡守)로 내침을 당하자 사직서를 올리고 부임치 않았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국암 극효(克孝)와 함께 정암 조광조를 구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관직이 삭탈되었다. 그러자 남양(南陽)에 은둔하고는 일체 남들과 만나지 않았다. 그 후 남곤(南哀) 등이 패(敗)하니, 동지성균관사 김안국(金安國)이 임금에게 서용(敍用)을 청하자 우거(寓居)를 연성(蓮城)의 초지(草芝)로 옮겨 몸을 숨겼다. 몸을 드러내지 않고, 성리(性理)에 정진하여 공맹(孔孟)의 성경(聖 經)에서부터 정주(程朱)의 집설(輯說)에 이르기까지 읽고 꽤 뚫어 통달했다. 저서로 오헌집(梧軒集)이 있다. 동고 이준경이 묘지를 썼다. 안동권씨 정승공종의 오헌감찰공파(梧軒監察公派) 파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