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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 정승공종]권극효(權克孝)

작성일 : 2019-02-09 12:47 수정일 : 2019-06-30 21:17

권극효(權克孝) :

: 1475(성종 6)- 1553(명종 8) 자는 사행(士行), 호는 국암 (菊庵)익헌공(翼憲公) 종손(宗孫)의 아들. 일두(一蠶) 정여창(鄭汝昌)과 한훤,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으로 문신이며 학자다. 1489(성종 20) 15세로 진사시에 합격하여 태학(太學)에 입학했다. 1498(연산군 4) 무 오사화로 추삭(追削)된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의 신원(伸究)을 청원하고, 정여창과 김굉필의 유배해지를 청원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로 인해 11월에 안변(安邊)으로 귀양을 갔다가 좌의정 노사신(盧思愼)의 주청으로 12월에 방면됐다. 1504(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정여창과 김굉필의 사사(賜死)를 구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정망(停望) 처분을 받았다. 1507(중종 2)에 사헌부 집의(執義), 1509(중종 4)에 사헌부 지평(持平)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이유로 나가지 않았고, 이듬해에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성거산(聖居山)에서 주역을 강론했다. 이후에도 지평에 일곱 차례, 사헌부 장령(掌令)에 다섯 차례나 제수되었으나 모두 블취했다. 1518 (중종 13) 44세 때 사간원 정언(司陳院正言)이 되어서는 김안로(金安老) 의 파직을 청했고, 그해 겨울에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으로 자리를 옮겼다. 1519(중종 14)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조광조를 구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삼사(三司)의 논척을 받아 삭탈관직 되었다. 1541(중종 36) 통정대부(通政大夫)로 품계가 오르고, 시강원 시강관(侍講院侍講官)에 제수됐으나 사직서를 올려 산반(散班)에 부속되었다. 1556(명종 11)에 어서(御書)"계세지효(繼世之孝)” 넉자의 큰 글씨와 함께 효자 정려가 내려졌다.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이 묘소를 정하고 묘지(墓誌)를 찬()하였고,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언행록(言行錄)을 지었다. 1578(선조 11) 사림(士 林)의 소청으로 양주(楊州) 일민사(逸民祠)에 봉향되었는데, 1637(인조 15) 청국군의 방화로 일민사가 블타버렸다. 안동권씨 정승공종(政丞公宗) 의 국암장령공파(菊庵掌令公派) 파조(派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