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3(세종 15)~1504년(연산군 10) 시호(諡號)는 양호(襄胡), 목사 치(寘)의 次子이며 좌의정(左議政) 정(貞)의 아버지. 1453년(단종 1) 음보로 충의위(忠義衛)에 배속되었고, 1459년(세조 5)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웅구용지사(雄舅勇之士)의 칭호를 받고 왕실 금위(禁衛)로 발탁되었다. 1467년(세조 13) 함경도 길주의 호족 이시애(李施愛)의 난(亂)이 일어나자 조석문(曺錫文) ‧ 어유소(魚有沼) 등과 함께 반군을 토벌한 공으로 정충출기적개공신(精忠出氣敵愾功臣) 서훈을 받고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승서(陞敍) 되었다. 1475년(성종 6)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회령도호부사(會寧都護府使), 1483년(성종 14) 가선대부(嘉善大夫) 풍산군(豐山君)에 봉해지고 다음 해 봉조하(奉朝賀)의 은전을 받았다.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고 신도비(神道碑)와 사당(祠堂)은 김포시 지정 향토유적(金浦市 指定 鄕土遺蹟) 4호이다. 산소는 신도비, 사당과 함께 김포시 운양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