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29 10:25
자(字)는 중안(仲岸)․덕민(德民), 호(號)는 우연옹(偶然翁), 시호(諡號)는 무의(武毅), 충정(忠貞)으로 개시(改諡), 통제사(統制使) 율(嵂)의 아들. 1795년(정조 19) 무과(武科)에 급제, 1811년(순조 11) 홍경래(洪景來)의 난 때 박천 군수(博川郡守)로 포로가 되어 인부(印符)를 빼앗기고 항복을 요구받았으나 갖은 고문과 회유에도 굽히지 않고 이를 거절, 100여일간 구금되었다.
난이 평정된 뒤에 그 충절을 표창받고 우림위장(羽林衛將)에 이어 훈련대장(訓鍊大將)․어영사(御影使)․금위대장(禁衛大將)․총융사(摠戎使) 등 요직을 역임, 형조 판서(刑曹判書)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