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29 10:24
1727(영조 3)~1796(정조 20) 자(字)는 치공(穉恭), 호(號)는 운호(雲號), 시호(諡號)는 문경(文敬), 함흥 판관(咸興判官) 적(適)의 아들. 1762년(영조 38)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772년(영조 48) 동몽교관(童夢敎官)을 거쳐 시직(侍直)을 지내고, 서연관(書筵官)으로서 세손(世孫 : 정조)을 보필하여 학문을 강론하는 등 신임이 두터웠으나, 1776년 정조(正祖)가 즉위한뒤 홍국영(洪國榮)의 세도정치(世道政治)가 시작되면서 요직에 등용 되지 못하고 사옹원 주부(司饔院主簿)․온릉령(溫陵令)․청산 현감(淸山縣監) 등 미관말직(微官末職)을 역임했다.
형인 성주(聖周)는 학문을 이어 받아 이(理)와 기(氣)의 이원론(二元論)을 배격하고, 기를 일원적(一元的) 관념으로 통일하여 성즉기(性卽氣)라고 주장, 주기설(主氣說)을 확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