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29 10:17
1687(숙종 13)~1730(영조 6) 자(字)는 성능(性能), 호(號)는 서재(西齋), 시호(諡號)는 충헌(忠憲), 집의(執義) 형(泂)의 아들. 1713년(숙종 39)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이듬해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승문원 부정자(承文院副正字)가 되고 정언(正言)을 거쳐, 1721년(경종 1) 지평(持平), 이어 병조 좌랑(兵曹佐郞)․사서(司書) 등을 역임하다가 신임사화(辛壬士禍)로 삭직(削職)당했다.
1725년(영조 1) 노론(老論)이 다시 집권하자 장령(掌令)으로 등용 되어 6개조의 상소문을 올려 탕평책(蕩平策)을 반대, 소론(少論)의 제거를 주장하다가 이듬해 순안(順安)에 유배, 1727년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소론(少論)이 등장하다가 다시 대정현(大靜縣)에 위리안치 (圍籬安置), 이듬해 소론의 영주 이광좌(李光佐)의 주청으로 투옥된 뒤 고문을 받고 옥사했다. 정조(正祖) 때 관직이 복구되고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