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29 10:12
1640(인종 18)~1724(경종 4) 자(字)는 대중(大仲), 호(號)는 수촌(水村)․우졸옹(愚拙翁), 시호(諡號)는 문희(文僖),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 의백(義伯)의 아들.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俊吉)의 문인.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후 1671년(현종 12) 창릉 참봉(昌陵參奉)이 되고, 내외직을 거쳐 1689년 (숙종 15) 호조 정랑(戶曹正郞)이 되었으나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인현 왕후(仁顯王后)가 폐위되고 송시열이 유배되자 사직했다.
1694년 인현왕후가 복위된 후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로 기용, 이어 군자감정(軍資監正)․단양 군수(丹陽郡守)․사옹원 첨정(司饔院僉正) 등을 역임하고 1702년 63세로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장령(掌令)이 되고, 그뒤 대사성(大司成)․승지(承旨) 등을 거쳐 1719년(숙종 45) 공조 판서(工曹判書)가 되었다.
1721년(경종 1) 우참찬(右參贊)에 승진되었으나 신임사화(辛壬士禍)로 함종(咸從)에 유배, 후에 금천(金川)에 이배(移配)되어 배소(配所)에서 죽었다. 영조(英祖)가 즉위하자 신원(伸寃)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