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29 10:10
1635(인조 13)~1715(숙종 41) 자(字)는 덕장(德章), 호(號)는 죽실(竹室), 시호(諡號)는 효정(孝貞), 생원(生員) 환(日奐)의 아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 1666년(현종 7) 별시문과(別時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승문원(承文院)을 거쳐, 지평(持平)․정언(正言)을 지내고, 1674년(현종 15) 남인(南人)에 의 해 경성 판관(鏡城判官)으로 좌천되었다.
1680년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때 서인(西人)의 과격파인 김석주(金錫冑)를 옹호했으나 그의 오해로 제주 목사(濟州牧使)로 밀려 났다가 병조 참지(兵曹參知)․승지(承旨)․예조 참의(禮曹參議)․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호조 참의(戶曹參議)․충청도관찰사를 역임, 1688년(숙종 14) 진위사(陣慰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병조 참의(兵曹參議)․형조 참판(刑曹參判)을 거쳐 1714년(숙종 40)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문장과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경사(經史)에 정통하여 이름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