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29 09:51
1486(성종 17)~1557(명종 12) 자(字)는 사경(士經), 호(號)는 정용재(靜容齋), 시호(諡號)는 정헌(貞憲), 공조 판서 유겸(由謙)의 아들. 1507년(중종 2) 진사가 되고, 1513년(중종 8)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에 보직되었다가 검열(檢閱)․저작(著作)․교리(校理)․이조정랑(吏曹正郞)․병조 정랑(兵曹正郞)을 지냈다.
이어 지평을 거쳐 필선(弼善)․사인(舍人)․세자시강원 보덕(世子侍講院輔德) 등을 역임, 1527년 직제학(直提學)에 올랐다. 1530년 종부시정(宗簿寺正)을 거쳐 집의(執義)가 되었으나 이조 판서 장순손(張順孫)의 미움을 사서 사섬시정(司贍寺正)으로 좌천, 그뒤 다시 집의가 되어 김안로(金安老)의 폐정(弊政)을 논박하다가 파직되었다.
1537년 김안로가 제거되자 등용되어 예조 참의(禮曹參議)․병조참지(兵曹參知) 등을 역임, 1539년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예조 참판(禮曹參判)이 되고, 경상도 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이유로 사퇴, 다시 이조 참판이 되어 우부빈객을 겸했다.
전라도 관찬사를 거쳐 1542년 병조 판서, 1544년 예조 판서가 되고, 1546년(명종 1) 지춘추관사를 겸임, 이어 추참찬에 오르고 좌참찬(左參贊)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