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공보(公輔), 호는 읍취(挹翠). 기 성군파(箕星君派)(시조 언의 17세손) 임진란에는 의병을 이끌고 김천일(金千鎰) 장군 막하에서 누차의 적침(敵侵)을 막아 공을 세우고 순절(殉節)하여 초혼장(招魂葬)을 함. 마을서편 작은산에 일산(一傘)처럼 생긴 소나무가 있어 그 이름을 읍취(揖翠)라 하였고, 그 아래에 정자를 지어 강회소(講會所)로 삼고 호를 읍취(揖翠)라고 하였다. 공훈이 기록되어 철권(鐵卷)이 있고 사실이 <삼강록 三鋼錄>에 등재(登載)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