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4~1533 19世 호가 낙서헌(洛西軒)이고, 연산군(燕山君) 4년(1498)에 문과에 급제하여 중종 1년(1506)에 호당(湖堂)에 선발되었다. 중종 14년(1519)까지 이조(吏曹), 예조(禮曹),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지내고, 좌찬성(左贊成),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이사(貳師)가 되었다. 중종 19년(1524)에 김안로(金安老)의 죄상을 논죄하다가 누명을 쓰고 유배되어 적소(謫所)에서 사사되었다. 후에 문익공(文翼公) 정광필(鄭光弼)의 신원(伸寃)으로 관작(官爵)이 복구(復舊)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