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봉순대부(奉順大夫) 젊어서부터 효성이 지극하더니 벼슬에 임하여도 첨렴검소 하였다. 일직이 외직으로 해남감무(海南監務 從六品) 해주감목(海州監牧 從五品)등을 역임하고 내직으로 소윤(小尹 從四品)을 역임하다가 이성계 일파의 혁명으로 인하여 여흥왕(麗興王)과 윤왕(允王)이 시해되고 최영(崔塋) 변안렬(邊安烈) 정몽주(鄭夢周)등 고려 충신들이 잇따라 참화를 당함에 운곡 원천석(耘谷 元天錫)이 고려의 종사를 슬퍼하며 원주 치악산(雉岳山) 에서 단사(壇祀)를 모심에 임탁도 망복동지(罔僕同志)들과 더불어 참사하고 기울어가는 고려의 운을 구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마침내 간성왕(杆城王) 마저 찬탈(簒奪) 당하고 조선조가 건국함에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괘관현(掛冠峴)에 올라 관복을 걸고 통곡하면서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