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16 11:13
절제사(節制使), 1416년(태종 16) 무과에 장원(武科壯元)하고 사복소윤(司僕少尹)이 되더니 세종 6년 함경도 경원첨절제사(慶源僉節制使), 그 다음해 절제사(節制使), 9년에 경원절제사 겸 동지총제(同知摠制), 다음해 경원병마사(慶源兵馬使), 회령부사(會寧府使), 경원등지(慶源等地) 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 14년 참판(參判)으로 내직에 들어왔으나 19년 다시 경원절제사가 되었더니 자헌대부(資憲大夫)를 더했다. 21년 사직하니 경상도좌 도절제사(慶尙道左道節制使)에 임명, 다음해 중추원사 겸 평안도도절제사(平安道 都節制使), 25년과 26년에는 도체찰사(都體察使)와 경상우도처치사(慶尙右道處置使), 등을 거처 1451년(문종 원년) 함길도도절제사(咸吉道 都節制使)로 돌아가 일대의 야인을 제압하는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숭정대부(崇政大夫)가 가자(加資)된다. 그러나 계유정난(癸酉靖難)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반대세력인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 정분(鄭苯) 등을 제거한 사건에 연루되어 같이 죽음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