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14 14:58 수정일 : 2024-02-06 18:55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강좌칠현(江左七賢) (1152-1220) 초명 得玉 字 眉叟 호 靑蓮/臥陶軒
28세가 되던 1180년 봄에 장원급제, 1182년(명종 12) 사신 병부시랑(兵部侍郞) 최영유(崔永濡)의 서장관(書狀官)으로 금나라를 다녀와 계양(桂陽)의 서기가 되었고 곧 한림원에 들어오니 거의 모든 사소(詞疏)가 그의 손에서 나왔다. 한림원(翰林院)과 고원(誥院 : 藝文館)에서 14해를 보내는 동안 문장이 샘물 솟듯 하여 조금도 막힘이 없으니 그 때 사람들이 이걸 가르쳐 복고(腹藁)라고 하였고 당대 명유인 오세재(吳世才), 임춘(林椿), 조통(趙通), 황보항(皇甫抗), 함순(咸淳), 이담지(李湛之)등과 망년우를 맺고 술과 시로 서로를 위로하니 세인들이 강좌칠현 (江左七賢)에 비견하였다.
또 한때는 최당(崔讜) 등 9인(최당, 장자유, 이준창, 이세장, 백광신, 고영중, 현덕수, 함순, 이담지)의 기로회(耆老會)에 끼어 연령(年齡)으로는 맞지 않으나 이 여러 노인들 틈에 놀면서 시문 100여수를 지어 좌중을 즐겁게 하였다. 여러 번 옮겨 신종조(神宗朝)에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이 되고 고종초(高宗初)에 비서감(秘書監)에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를 겸하게 하였다.
저서로는 은대집(銀臺集), 쌍명재집(雙明齋集), 파한집(破閑集) 등이 있으나 현제는 파한집과 동문선(東文選)에 사, 부, 고시, 율시, 절구, 제고, 표전, 서, 발, 제문(辭, 賦, 古詩, 律詩, 絶句, 制誥, 表箋, 序, 跋, 祭文) 등 107편이 수록 되어 전해지고 있다. 정(程), 양(穰), 온(榲)의 3아들이 과거에 급제하였고 서자 세황(世黃)도 파한집(破閑集)을 간행하면서 발문을 남겼을 정도로 문재가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