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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씨] 이자겸(李資謙)

작성일 : 2018-08-14 14:40

(1060-1126) 조선국공(朝鮮國公)/한양공(漢陽公)중서령 자연의 손자, 경원백

호의 장자, 문음으로 합문지후에 올랐으며, 47세인 1106년(睿宗 元年)에 시어사중승(試御使中丞), 2년 후에는 급사중(給事中: 從四品)이 되었는데 같은 해에 딸이 睿宗의 왕비로 들어감에 따라 50세에 예빈경(禮賓卿: 從三品)과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使: 從二品)로 재상의 반열에 들었다. 그 후 어사대부 (御史大夫: 正三品), 수사공(守空) 병부상서(兵部尙書) 판삼사사(判三司事: 從 一品), 상서좌복야(尙書左鰒射: 正二品), 55세 때인 1114년(睿宗9)에 수사도(守司徒)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中書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 겸 서경유 수사(西京留守使)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수태위(守太衛), 판병부사(判兵部事), 판이부사(判吏部事), 판서북면병마사겸중군병마사(判西北面兵馬使兼中軍兵馬 使)가 더해지고 1121년엔 소성현개국백에 봉했다. 7살에 태자로 책봉된 외 손자를 집으로 대려다 金端 등 과 같은 박학다문(博學多聞)한 8사람들로 하 여금 제왕(帝王)에 필요한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122년에 예종이 승하 (昇遐)니 고명(顧命)으로 왕위를 넘보던 왕의 아우들을 물리치고 14살의 어 린 왕자를 받들어 임금의 위에 오르게 했다. 그 공으로 수태사중서령소성후(守太師中書令邵城侯)에 올랐으며 곧이어 한양공(漢陽公)에 책봉되었다. 임금의 숙부들의 편에서 왕위를 위협했던 조선국공의 반대세력은 이번에는 이간책을 써서 음양가(陰陽家)들로 하여금 목자위왕(木子爲王:이 씨가 왕이 된다)란 유언비어를 퍼뜨리게 하고 임금을 현혹하니 이에 넘어간 임금은 하급무장들을 부추켜 외조 조선국공을 제거하기 위하여 친위 쿠테다를 일으켜 무리 하에 섭정인 외할아버지에게서 왕권을 회수하고는 이는 외할아버지가 역모를 획책 했기 때문에 대의멸친(大義滅親)하였다고 승리자로서 자신의 입장만을 역사에 기록 하도록 강요했다. 이 사건이 이른바 이자겸의 역모사건이다. 비록 일본사람 이긴 하나 인주이씨(仁州李氏)를 연구한 경성제대교수(京城帝大敎授) 후지다료사꾸(藤田亮策)는 그의 연구논문(硏究論文)에서 이자겸의 역모사건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소설 즉 불 허상에 불과 하다. 경솔 하고 깊은 생각이 없는 인종(仁宗)은 소인배의 말에 현혹되어 무모한 계획에 따라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첫 번은 실패했고 그 후 두 달이지나 제2차 쿠데타에는 외할아버지인 조선국공이 스스로 잡혀 주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급무장들에 의지하여 이룬 이 사건은. 당사자인 인종의 아들에게 되돌아와 의종(毅宗)은 하급무장들이 주축이 된 정중부(鄭仲夫)의 무신란(武臣亂)으로 퇴위되면서 고려의 왕들은 무력한 존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