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8 15:19
1680(숙종 6)~1746(영조 22) 자(字)는 희경(熙卿), 호(號)는 도암(陶庵)․한천(寒泉), 시호(諡號)는 문정(文正), 진사(進士) 만창(晩昌)의 아들. 1702년(숙종 28)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로서, 찬집청 기사관(撰集廳記事官)을 겸하여「단종실록(端宗實錄)」편찬에 참여했다.
1707년 봉교(奉敎)로서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홍문과(弘文館)에 등용된 후 헌납(獻納)․북평사(北評事)를 지내고,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으며, 1711년 이조 정랑(吏曹正郞)으로서 문학(文學)․승지(承旨)․부제학(副提學)․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등을 거쳐 함경도 관찰사(咸鏡道觀察使)가 되었다.
1721년(경종 1) 예조 참판(禮曹參判)으로 재직중 소론의 재집권으로 삭직(削職)되자 인제(麟蹄)에 들어가 성리학의 연구에 전심하였으며, 1725년(영조 1) 영조의 즉위로 노론이 재집권하자 부제학(副提學)에 복직되고 대제학(大提學)․이조 참판(吏曹參判) 등을 지냈다. 조선 후기 성리학계의 대가로서 당시 낙론(洛論)의 대표적 학자로 일컬어졌으며,「율곡전서(栗谷全書)」를 산정(刪定)했다. 서화(書畵)에도 능했으며 용인(龍仁) 한천서원(寒泉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