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7 15:07
어려서부터 총명 호학하시어 널리 경사에 통달하시고 특히 병려문에 능하시어 약관에 이미 세상일에 밝으셨고 행세하는 유학자가 되셨다. 영조 37년에 정시문과 급제 설서 봉교 그 무렵 무단결근으로 한때 경양도찰방으로 좌천되었으나 그후 정언 비변사랑관 으로 재직중 또다시 영남의 창고 관리부실로 유배되셨다.
이어 여러 벼슬을 거쳐 동 49년 대사간 승지 정조 4년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다시 대사간 동 6년 사은부사로 재차 청나라에 가셨고 다음 한성부좌윤 대사헌 병조참판 동 11년 예조판서 한성부판윤등을 거쳐 함경도감사를 끝으로 벼슬을 떠나셨다. 좌찬성이 증직되시고 효간의 시호가 내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