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천문.산수에 능했던 성리학자로 12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라난 그는 소학을 배울때 과부의 아들에게 특이한 행실이 없거던 시귀지 말라는 구절에 크게 충격을 받아 그때부터 밤낮없이 수학 에 힘썼다고 한다. 그는 정미사화(명종3)에 화를 입어 양산으로 귀양갔다 풀려나기도 했는데 귀양가면서도 어찌나 태연한지 금부도사 조차 감탄했으며 풀려나 많은 하객들이 찾아와 축하하는데도 조금도 기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아 도리어 하객이 무안했을 만큼 신중 침착했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