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2 15:21
1821(순조 21)~? 자(字)는 경중(景中), 좌열(佐烈)의 아들. 1855년(철종 6)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에 초임(初任)되었고 정언(正言)․지평(持平)․부수찬(副修撰) 등을 역임, 1863년(철종 14) 호조 좌랑(戶曹佐郞)을 거쳐 1877년(고종 14) 동래 부사(東萊府使)가 되었다.
이해 10월 일본의 전권대신(全權大臣) 하나부사(花房義質)가 부산에 상륙하여 일본공사의 경성 주차(京城駐箚)와 개항장(開港場)을 요청하는 일본정부의 요구를 조정에 보고했다가 정부의 거부 지시를 받고 그들의 무단 상륙과 해변 측량을 항의했다.
이듬해 일본의 야마노시로(山城祐長)가 부산항 관세(關稅) 문제로 항의를 제기해 왔으나 정부의 묵살 지시로 수리를 거부했고, 1879년 일본군이 상륙, 훈련을 빙자하여 동래로 행진해 오자 이에 격분한 백성들이 돌을 던져 저항한 사실을 핑계삼아 관아에 함부로 들어오므로 이를 막다가 판찰관(辦察官) 현석운(玄昔運)과 함께 그들의 칼에 부상을 당했으나 끝까지 수교(修交)를 거부, 일본의 만행을 항의 했다. 뒤에 정부의 정책 변경으로 문호가 개방되고 수교(修交)가 이룩되자 일본의 압력으로 파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