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2 14:58
1647(인조 25)~1712(숙종 38) 자(字)는 중강(仲綱), 호(號)는 용포(龍浦), 시호(諡號)는 효헌(孝獻), 판서 계(堦)의 아들, 1682년 장령(掌令)을 거쳐 1687년 승지(承旨)에 재직중 비망기(備忘記)의 환수(還收)를 청했다가 파직당했다.
이듬해 다시 기용되어 승지로 복직, 1689년 고부사(告訃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이해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서인(西人)이 추방당하자 파직, 유배되었다.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甲戌獄事)로 남인(南人)이 실각하자 풀려 나와 병조판서(兵曹判書)에 등용되고, 1703년 반송사(伴送使)를 겸한 뒤 이듬해 서북면 출신의 무신도 선전관(宣傳官)으로 기용하라는 왕명을 시행하지 않았다가 다시 파직되었다.
1705년 호조 판서로 기용되어 우참찬(右參贊)․예조 판서(禮曹判書)․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등을 역임, 이어 좌참찬(左參贊)으로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를 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