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찾기

조상찾기

HOME > 조상찾기

[광주이씨] 이백래(李白來)

작성일 : 2018-08-01 11:08

초명(初名)은 웅래(雄來), ()는 윤선(允善), ()는 성재(省齋)이며 광원군(廣原君) () 극돈(克墩)15대손(代孫)으로 보성읍(寶城邑) 우산리(牛山里)에서 철종(哲宗) 임술(壬戌 1862)814일 병규(秉奎)의 차자(次子)로 출생하였다. 소년시절에 종숙(從叔) 병응(秉應)의 문하(門下)에서 경서(經書)를 수학(修學)하고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선생을 사사(師事)하였으며 서울로 와서 만민공동회의(萬民共同會議)에도 참가하였다. 소위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 후에 동지(同志)와 같이 오적암살(五賊暗殺)의 계획에 참여하였으나 결행미수(決行未遂)로 끝났다. 정미(丁未 1907)4월에 호남창의도대장(湖南倡義都大將)으로서 능주(綾州), 화순(和順), 동복(同福) 등지를 접수(接受)하고 광주(光州)로 진군(進軍) 중 왜적(倭賊)에게 피체(被逮)되어 八十八人 중 한 사람으로 십 년의 유형(流刑)을 받고 정배(定配) 중 순종(純宗) 즉위(卽位)로 은사해금(恩赦解禁)을 받고 1908년에 數十次의 항일투쟁(抗日鬪爭)을 하던 끝에 1909517일 왜적(倭賊)에게 피체(被逮)되어 동월(同月) 20일 왜진(倭陳) 중에서 애석히도 순국(殉國)하였다. (出典-皇城新聞, 湖南節義史 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