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7-26 13:35
1627(인조 5)~1704(숙종 30) 자(字)는 중린(仲麟), 호(號)는 두포(杜浦), 판서 강(絳)의 아들, 우의정(右議政) 지완(趾完)의 형. 1660년(현종 1) 진사(進士)가 되고, 1662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설서(設書)․정언(正言)․지평(持平) 등을 지냈다. 1674년 헌납(獻納)․이조좌랑(吏曹佐郞)을 거쳐 이해 숙종(肅宗)이 즉위한 후 이조 정랑(吏曹正郞)에 오른 뒤 이어 부수찬(副修撰)․종성부사(鍾城府使)․동부승지(同副承旨)를 역임했다.
1681년 대사간(大司諫), 공충도(公忠道)와 함경도(咸鏡道)의 관찰사(觀察使)를 역임, 1683년 도승지(都承旨), 이듬해 형조 참판(形曹參判)․대사헌(大司憲), 이어 이조 참판(吏曹參判)․광주유수(廣州留守)․한성부 좌윤(漢成府左尹)을 지내고, 1694년 병조 판서로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지경연사(知經莚事)등을 겸임했다.
이조 판서에 이어 1696년 공조 판서(工曹判書)․좌참찬(左參贊)․우의정(右議政)이 되고 이해 좌의정에 올랐다. 1698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고,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를 거쳐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 죽었다. 온건한 성품으로 당화(黨禍)를 입지 않고 숙종의 측근자로서 총애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