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7-26 13:09
1568(선조 1)~1643(인조 21) 초명은 의립(義立), 자(字)는 지중(止中), 호(號)는 월담(月潭), 판서선각(先覺)의 아들. 1594년(선조 27)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에 등용되어 설서(設書)를 겸했다.
정자(正字)로 재직중 1624년(인조 2) 조카가 이 괄(李 适)의 난에 가담하여 처형된 뒤부터 벼슬을 그만 두었다가 1626년 경주 부윤(慶州府尹)이 되고, 이어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형조 참판(形曹參判)을 거쳐 함경도․충청도․경기도의 관찰사(觀察使)를 역임하고 형조 판서․예조 판서에 이르렀다. 그림과 글씨에 능했고 특히 그림은 산수화(山水畵)를 잘 그려 이름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