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7-26 12:50
1494(성종25)~1566(명종 21) 자(字)는 여옥(汝沃), 호(號)는 회재(晦齋)․서파(西坡), 현감(縣監) 계손(季孫)의 아들. 감안국(金安國)의 문인. 1516(중종 1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저작(著作)․이조 좌랑(吏曹佐郞)을 지내고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었으나 한어(漢 語)에 능한 탓으로 외직(外職)에 좌천되는 것으로 그쳤다.
그후 다시 등용되어 필선(弼善)․예조 정랑(禮曹正郞)을 역임, 1536년(중종 31) 김안로(金安老)의 배척으로 창성(昌城)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김안로가 사사(賜死)되자 풀려나와 1545년(인종 1)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예조 판서로 윤원형(尹元衡) 등과 대윤(大尹)의 제거에 가담하여 그 공으로 위사공신(衛社功臣) 3등이 되고, 1548년 (명종 3)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영평군(鈴平君)에 봉해졌으며, 1551년 우의정, 1558년 좌의정이 되었으나 이해 이 양(李 樑)의 배척을 받아 면직당했다. 이 양이 제거된 후 다시 복직, 1563년 영평부원군(鈴平府院君)에 진봉(進封)되어 궤장(几杖)을 하사받고 영경연사(領經莚事)를 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