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7-26 10:38
?~1111(예종 6) 자(字)는 동현(同玄), 시호(諡號)는 문숙(文肅), 검교소부소감(檢敎小府少監) 집형(執衡)의 아들. 문종(文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 1088년(선종 5) 합문 지후(閤門祗候)로 광주(光州)․충주(忠州)․청주도(淸州道) 등지에 출추사(出推使)로 파견되고, 습유(拾遺)․보궐(補闕)을 거쳐 1095년(헌종 1) 좌사 낭중(左司郎中)으로 요나라에 파견되어 숙종(肅宗)의 즉위를 알렸다.
1098년에 동궁 시강학사(東宮侍講學士)가 되어 조 규(趙 珪)와 함께 사신으로 송나라에 가서 왕의 사위(嗣位)를 알리고, 이듬해「자치통감(資治通鑑)」을 기중받고 귀국하였다. 1101년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이어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어사 대부(御史大夫)․이부 상서(吏部尙書) 등을 거쳐 1104년 추밀원사(樞密院使)로서 동북면행영병마도통사(東北面行營兵馬都統使)가 되어 여진(女眞)을 정벌하다가 실패했다.
그후 별무반(別武班)을 창설하여 군대를 양성, 1107년(예종 2) 여진 정벌의 원수가 되어 부원수(副元帥) 오연총(吳延寵)과 17만 대군을 이끌고 동북계에 출전했다.
이때 함주(咸州)․영주(英州)․웅주(雄州)․복주(福州)․길주(吉州)․공험진(公嶮鎭)․숭녕(崇寧)․통태(通泰)․진양(眞陽) 등 9지구에 성(城)을 쌓아 침범하는 여진을 평정하여이듬해 봄에 개선, 그 공으로 추충좌리 평융척지진국공신․문하시중(門下侍中)․판상서이부사 (判尙書吏部事)․지군국중사가 되었다.
이해 여진이 계속 북변 침범하자 다시 출전했으나 패전했고, 그후 여진이 9성의 환부를 요청하며 강화를 교섭해 오자 조정은 지키기 어렵다 하여 9성을 여진에게 돌려주고 강화를 한뒤 모함을 받아 패군의 책임을 지고 회군하는 도중 벼슬을 뺴앗기고 곧 공신마저 삭탈 (削奪)되었다가, 1110년 수태보(守太保)․문하시중(門下侍中)․판병부사(判兵部事)․상주국(上柱國)․감수국사(監水國史)가 되었으나 우울 한 날을 보내다 죽었다. 예종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