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7-23 14:33
1332(충숙왕 복위 1)~1410(태종 10) 자(字)는 맹양(孟陽), 호(號)는 송강(松岡), 시호(諡號)는 문간(文簡). 시중(侍中) 연수(延壽)의 6세손, 연경궁 제학(延慶宮提學) 기종(起宗)의 아들. 1357년(공민왕 6) 문과(文科)에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군부 좌랑(軍簿佐郞) 때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갔다. 1376년(우왕 2) 우헌납(右獻納)에 임명되었으나 친상(親喪)으로 거절하고 1388년(우왕 14) 내부 소윤(內府少尹)에 다시 등용, 이어 효자로서 정문(旌 門)이 세워졌다.
1392년 내서사인(內書舍人)으로 이성계(李成桂)를 옹립, 조선건국에 공을 세워 개국공신(開國功臣) 3등이 되어 안평군(安平君)에 봉해지고 형조 전서(刑曹典書)가 되었다. 1394년(태조 3) 대사헌이 되고 1396년 신덕왕후(神德王后)가 죽자 3년간 수묘관(守墓官)이 되었으며, 1398년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에 올랐다.
1400년 태종이 즉위하자 시랑(侍郞)․찬성사(贊成事)에 이어 우의정(右議政)으로 부원군(府院君)에 진봉(進封)되어고 명사(誥命使)로 명나라에 다녀온뒤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가 되었다. 1402년 함흥(咸興)에 갔던 태조를 중(僧) 설오(雪悟)와 함께 안주(安州)에 나가 맞아 귀경, 1404년 다시 우의정(右議政)이 되었다. 이듬해 치사(致仕)했다가 영의정(領議政)에 올랐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뒤 만년을 향리에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