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원주이씨시조(原州李氏),이춘계(李椿桂)

작성일 : 2018-03-17 15:28 수정일 : 2018-05-01 13:06

 

 

원주 이곡사는 시조 춘계공 이하 14위의 조상 위패를 배향하고 있는 사당으로 1987년 10월 30일 창건되었으며 원주이씨 종중의 표상이기도 하다.

강원도 원주시 저정면 간현리

원주이씨의 연원

원주이씨(原州李氏)의 원조(元祖)는 서기 기원전(紀元前) 200년대에 중국 한고조(漢高祖)때 진란(秦亂)을 피하여 중원절서지방(中原浙西地方)에서 고조선(古朝鮮)에 들어온 이래 고대(古代) 씨족사회(氏族社會)를 이루고 군거(群居)하여 신라(新羅) 16대 흘해왕조(訖解王朝)(서기310년-365년대)에 원시조(遠始祖) 휘(諱) 진민공(眞民公)이 신라에 득사위(得仕位)하시고 진민공의 27세손인 휘(諱) 도균공(道均公)의 2남으로 고려 17대 인종(仁宗), 18대 의종(毅宗) 양대(兩代) (서기1122년-1170년)에 (병부상서(兵部尙書)와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28세손 휘(諱) 춘계공(椿桂公)을 시조(始祖)로 모시고 그 후손이 원주에 집성촌을 이루고 원주(原州)를 본관(本貫)으로 하고 소목상전(昭穆相傳)하여 오늘의 대성(大姓)으로 발전하여왔다.

始祖로 부터 8세손(八世孫) 중시조(中始祖) 희백(希伯) 부령공(副令公)의 자(子) 9세손(九世孫) 녹규(祿圭) 판위공(判衛公)이 10세(十世) 임공(琳公),인공(璘公), 침공(深公) 3형제를 두었으니 1男 임(琳) 봉어동정공(奉御同正公)이 동정공파(同正公派) 시조(始祖)이며, 2男 인공(璘公)의 자 11세손(十一世孫) 방진(邦珍) 현령공이 12세손인 아들 완(玩) 주부공(主簿公)과 거(琚) 봉례랑공(奉禮郞公) 형제를 두었으니 장남(長男) 완공(玩公)이 주부공(主簿公) 파시조(派始祖)가 되었고, 차남(次男) 거공(琚公)이 아들 6형제(六兄弟)를 두었으니 13세(十三世) 기, 추, 월, 부, 필, 진(起, 趨, 越, 赴, 필, 趂) 6형제(六兄弟)가 각기 은사공(隱士公), 교도공(敎導公),사용공(司勇公),사직공(司直公),갈촌공(葛村公). 평천공(平川公)으로 6개 파시조(派始祖)를 이루게 되었고, 녹규(祿圭) 판위공(判衛公)의 3남(三男) 침(琛) 병사공(兵使公)은 병사공파(兵使公派) 시조(始祖)로서 모두 9개파(派)로 분파(分派) 되어 있다.

원주이씨 중흥비

 

시조 춘계공(椿桂公) 갈명(비문)

 

이곡사 경재 추원단 전경

1세(一世) 시조(始祖)의 휘(諱)는 춘계공(椿桂公)이며 고려 인종· 의종 양 조정에 벼슬하여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이르렀다.

2세(二世)의 휘는 수승(守升)이고, 묘소는 광주 온정동(廣州 溫井洞)에 있다고 전해오는데 알려지지 않았다.

3세(三世)의 휘는 단성(端誠)이고 국자진사(國子進士)를 지냈다.

4세(四世)의 휘는 유광(有光)이고 좌경군(左京軍)을 지냈다.

5세(五世)의 휘는 겸(謙)이고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냈다.

6세(六世)의 휘는 공량(公亮)이고 국자진사를 지냈으며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머리깎고 북방 이민족의 복장을 하라는 명(命)이 내리자 불복하고 은거하며 벼슬을 하지 않았다.

7세(七世)의 휘는 인비(仁庇)이고 호조총랑(戶曹總郞)을 지냈다.

7세(七世)까지의 묘소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8세(八世)의 휘는 회백(希伯)이고 고려 남부부령(南部副令)을 지냈다.

이때부터 문중을 빛낸 후손이 많고 빛나는 문헌(文獻)이 많으나 다 기술하기 어렵다. 아一갈라진물줄기가 긴 물은 그 물 근원이 반드시 깊으며, 가지와 잎이 무성한 나무는 그 뿌리가 튼튼한 법이다. 공의 덕업(德業)이 그렇듯 성대(盛大)하지 않았던들 어떻게 후손이 이렇듯 번창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묘소가 전해지지않아 우리가 근본의 은덕을 정성드려 갚을 묘소가 없음이 안타까웠다.

그러므로 신축년(辛丑年)에 도유사(都有司) 재훈(在薰) · 강연(康淵)씨 등 종중의여러분과 협의하여 찬조금을 모아 여기에 돌을 다듬어 비석을 세우고 제단을 설치하여 이제는 높으신 영령을 봉안한 곳이 있으니 뭇 후손들이 조상을 우러러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에

29 세손 전원성군수 중연(重淵)

29 세손 영연(泳淵) 삼가 기록함.

그 사적을 써서 비 뒷면에 기록하노라.

 

희백공(希伯公)의 전기(傳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