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나주정씨시조(羅州丁氏),정윤종(丁允宗)

작성일 : 2018-03-16 18:10 수정일 : 2019-09-05 12:10

나주정씨(羅州丁氏)의 연원(淵源)

1)  관적지(貫籍地)

나주정씨의 본관은 원래 압해(押海)였다. 압해는 전라남도 무안군에 속해 있는 면 단위의 섬이다. 백제 때에는 아차산(阿次山)군이었고, 통일신라 때는 산세가 바다를 압도한다는 뜻으로 압해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고려로 들어와서는 나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뒤에 한 때 영광군(靈光郡)에 예속되었고, 얼마 후에 다시 나주로 귀속되었다.

그 후 고려 말엽 이래로 왜구의 침략이 심해지자 조선 태종 9(1409)에 감사 윤향(尹向)이 도내 주읍(主邑)에 소속되어 있던 속현(屬縣) () () 부곡(部曲)을 모두 폐지하여 주읍으로 통폐합 시켰다. 이 때 나주목 관내의 토착성씨들은 종전의 소지역 본관에서 나주라는 대지역 본관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압해정씨도 본관을 나주 또는 압해로 겸용해 오다가, 영조(英祖)때에 이르러서는 압해가 폐읍이 되었다는 이유에서였던지 압해를 버리고 나주를 본관으로 삼아 최근까지 약 200여년을 사용해 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압해를 더 중요시해야 한다는 인식이 새롭게 대두되어 더러는 압해정씨 또는 나주압해정씨 등으로 혼용하고 있다. 구체적인 원적지를 따지자면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하겠지만 그러나 지금에 와서 나주를 버리고 압해로 복귀한다는 것은 기실 행정절차나 그동안 사용해온 인습에 비추어볼 때, 그렇게 쉽게 고쳐질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종회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본관을 나나정씨로 쓰고 있다.

 

2) 세거지(世居地)

나주정씨는 원래 토성으로 압해를 근거지로 당지의 호족(豪族)으로 살았다. 시조 정윤종(丁允宗)이래 제6(公逸)에 이르기까지는 계속 압해에서 살았고, 분묘도 다 그곳에 있을 터이나 애석하게도 지금은 다 실전된 상태이다. 그 후 제7(元甫)때에 이르러 검교호군(檢校護軍)이라는 명예직 무관벼슬을 얻은 것을 계기로, 비로소 개경(開京)으로 올라와 부근 덕수(德水)로 옮겨 살았다. 그 후 9세조(安景)때에 와서 황해도 배천(白川)으로 옮겨 살았는데 이때부터 제2의 세거지가 형성되고 분묘도 제대로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나주정씨는 압해도를 연원지로 점진적으로 도시를 향하여 사족화(士族化)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조선조로 들어와서는 마침내 문중에서 이상(貳相) 서열의 고위 관료를 배출하는 한양의 유명 가문으로 자리잡으면서, 경기도 고양의 토당리와 행신리 일대에 제2의 세거지 및 세장지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수백년을 거쳐오는 동안 자손들의 번창과 생활영역의 확산으로 인하여 전국 각지로 분거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3) 나주정씨의 시조(始祖)

나주정씨의 시조는 고려 중엽의 검교대장군 정윤종(丁允宗)이다. 우리나라에 족보가 있기 시작한 것이 1476(성종 7) 무렵이었으니까 그때부터 소급한다 하더라도 최고 약 300년 이상의 조상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잘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나주정씨도 최초의 가첩인 월헌첩(月軒帖)이 약 1520(중종 12) 전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고려 중기의 정윤종을 시조로 적어놓은 것은 매우 신빙성이 있는 기록이라고 하겠다. 보학자들의 일관된 주장도 왕실을 제외하고 사가성(私家性)의 시조추적은 그 상한선을 최고로 잡더라도 고려 초기를 넘을 수 없다고 단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더 오문(吾門)의 역대 족보의 기록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시조의 당대(唐代동래설(東來說)이 있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이미 약 200년전에 해좌(海左) 정범조(丁範祖),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등 지난날 오족(吾族)의 선조 석학들이 너무도 분명하게 변증해 놓은 바가 있었고, 최근에 와서도 이 문제에 관해서 몇몇 권위있는 학자들이 나주정씨 상계연구라는 논문집에서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서 입증한 바가 있다.

 

4) 세장지(世葬地)선영(先塋)

역대 세거지에 따른 세장지도 여러곳 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 1)  황해도 배천의 강서와 율학

( 2)  경기도 고양시 지도면의 토당리

( 3)  충북 음성군 원남면의 조촌리

( 4)  경기도 지도면 행신리 무원

( 5)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면 부제곡

( 6)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대야리

( 7)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 8)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백현(성남시)

( 9)  경북 예천군 용문면 내지동

(10)  경기도 용인시 포곡면 전대리 부곡

(11)  경북 청도군 금천면 임당동

(12)  충남 예산군 응봉면 지석리 북록

(13)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 사악

(14)  충남 천안시 불당동 후록

(15)  경북 울산군 두서면 복안리

(16)  경기도 시흥시 수암면 양상리

(17)  경기도 화성시 반월면 사사리

(18)  경기도 고양시 벽제읍 관산리

(19)  경북 청도군 금천면 등곡동 선자동

(20)  경북 문경군 갈벌 탑거리

(21)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곡촌

(22)  경기도 시흥시 의왕면 학의리 필동

(23)  경기도 개성군 서면 광정리

(24)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선도동

(25)  경북 영주시 상줄동 금당

(26)  경북 영주시 상줄동 여아

(27)  경기도 파주시 야동동

(28)  경기도 화성시 남양면 두송리

(29)  경기도 화성시 봉담면 유리

(30)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주암리

(31)  충남 서천군 기산면 영막리

(32)  경북 예천군 감천면 공현동

(33)  경북 선산군 해평면 송곡동

(34)  충남 처천군 화양면 기복리

(35)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개치동

(36)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면 마현

(37)  경북 성주군 용암면 죽전리

(38)  경기도 얀양시 포이동 덕장골

이중에서 경기도 고양시 지도면 일대에 있던 분묘는 지난 1988년에 도시계획으로 말미암아 부득이 모두 경기도 용인시 양지(陽智)의 제일리(齊日里)로 이장하였다. 제일리에는 그해 대규모의 선영(先塋)을 새롭게 조성하여 시조의 제단을 위시하여 월헌공 정수강(丁壽崗), 문화공 정옥경(丁玉卿), 공안공 정옥형(丁玉亨), 참봉경 정응허(丁應虛), 충정공 정응두(丁應斗), 우봉공 정윤지(丁胤祉), 전첨공 정윤조(丁胤祚), 병사공 정호서(丁好恕), 별제공 정호인(丁好仁)과 그 배위를 다함께 모셔 놓았다. 그래서 나주정씨의 또하나의 서역, 즉 영적 안식처로 자리잡았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나주정씨(羅州丁氏)는 전국 125,08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시대 인물(朝鮮時代 人物)

정수강(丁壽崗): 1454~1527 자는 불붕(不崩), 호는 월헌(月軒)이다. 1477년 식년문과에 급제 감찰 등을 거쳐 1482년 정조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후 부제학으로 승진하 였으나 갑자사화때 파직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다시 등용되어, 강원도 관찰사 판결사 대사간 형조참의 대사성 대사헌을 차례로 역임하고, 병으로 사직했다가 후에 병조참판 동지 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당대의 문장가로 한문소설 포절군전(抱節君傳)을 지었다. 저서로 월헌 집(月軒集)이 있다.

정옥형(丁玉亨) : 1486~1549 자는 가중(嘉仲), 호는 월봉(月峰)이다. 이조정랑에 올랐을 때 문 재(文才)로 간택되어 어전에서 주역 등을 강론하였다. 1536년 겨울 명 황태자가 탄생, 병조 참판으로 진하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후 경기도 관찰사를 거쳐 공조 형조 예조판 서로 옮겼다. 형조판서 때는 법령 조목의 전후 모순을 조절한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을 저 술했다. 그 후 대사헌 예조 병조판서를 지냈고 을사사화 때 윤임(尹任)등을 몰아낸 공으로 보 익공신(保翼功臣) 3등에 금천군(錦川君)으로 봉해졌다가 곧 삭탈 되었으나 다시 의정부 우찬 성을 거쳐 좌찬성에 올랐다. 시호는 공안(恭安)이다.

정응두(丁應斗) 1508~1572 자는 추경(樞卿), 호는 삼양재(三養齋)이다. 1534년 식년문과에 급제, 이조좌랑이 되었다가 곧 사가독서(賜暇讀書) 하였다. 그 후 약 20년동안 여러 관직을 역임한 뒤 대사헌에 올랐으나 부친의 중병을 돌보기 위해 사직하고 금계군(錦溪君)에 봉해졌 다. 경상 경기 등 관찰사를 역임하고, 다시 내직으로 병조판서, 이듬해 우찬성, 다음해에는 좌찬성으로 병조판서를 행하였으며 1568년에는 사은사로 두차례나 명나라에 다녀왔고 판중 추부사로 벼슬을 마쳤다.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정윤희(丁胤禧) : 1531~1589 자는 경석(景錫), 호는 고암(顧庵)이다. 1556년 알성문과에 장원 급제 이조좌랑을 역임하고 사가독서하였고, 뒤에 문과중시에 다시 장원하고, 판결사를 거쳐 장단부사로 나갔다가 예조 호조의 참의를 지냈다. 특히 사륙문에 뛰어나 한때 홍문관과 예문 관의 모든 서류를 찬술하였다.

정윤우(丁允祐) : 1539~1605 자는 천석(天錫), 호는 초암(草庵) 1570년에 문과에 급제 여러 관직을 두로 거친뒤 충청 강원도 관찰사와 말년에는 도승지 병조참의를 역임했다.

정윤복(丁胤福) : 1544~1592 자는 개석(介錫) 1567년 식년문과에 급제, 1575년 홍문관 교리 로 사은사의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후 도승지 병조참판을 지냈다. 1589년 정여 립 (鄭汝立)의 모반 사건에 연루, 파직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동서로호소사(東西路號召使)로 기용되고 이어 우통어사(右統禦使)가 되었다.

정호관(丁好寬) : 1568~1618 자는 희동(希東), 호는 정곡(鼎谷)이다. 1602년 별시문과에 급 제, 1607년 회답사 여우길(呂祐吉)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사헌부 지평을 지냈다. 1614년 동료 2~3명과 더불어 정온(鄭蘊)의 면죄를 상소하였다가 파직되었고 후에 흥해(興海) 군수로 나아갔다.

정호선(丁好善) : 1571~1632 자는 사우(士優), 호는 동원(東園)이다. 1601년 식년문과에 급제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부정을 범한 춘천부사 이원엽(李元燁) 양양현감 신경우(申景遇)를 팝면 시켜 지방의 관기를 확립하였다. 폐모론이 일어나자 병을 핑계로 고향에 은퇴하였다가 인조 반정 후 안변부사 풍기군수를 지냈다. 정묘호란때 파수대장(把守大將)을 지냈다.

정언황(丁彦璜) : 1597~1672 자는 중휘(仲徽), 호는 묵공홍(黙拱翁)이다. 별시문과에 급제, 장 령이 되었고 선고 정호관(丁好寬)의 억울한 누명을 소진(疎陳)하여 마침내 원한을 풀고 치욕 을 씻었다. 형조참의를 지냈고 서장관이 되어 심양(瀋陽)에 다녀왔다. 강빈옥사(姜嬪獄事)로 제주도에 유배된 소현세자의 세 아들의 구제를 상소 했으나 묵살되자 곧 벼슬을 그만두고 낙 향했다가 다시 승지 강원도 관찰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바로 물러났다.

정시걸(丁時傑) : 1606~1670 자는 대로(大老), 호는 관운(觀雲)이다. 직산현감 용인현령 가평 군수를 역임했다. 글로는 속적변(屬籍辨) 압해묘지변(押海墓地辨)이 있고 저서로는 압해정 씨술선록(押海丁氏述先錄)이 있다.

정시한(丁時翰) : 1625~1707 자는 군익(君翊) 호는 우담(愚潭) 조선시대의 철학자, 40대에 의 금부도사 별검, 50대에 주부 공조좌랑, 60대에 지평 진선 등으로 발령되어 그때마다 임금의 정중한 부름을 받았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기사환국(己巳換局)때 인현왕후를 폐위시킨 일을 잘못이라 상소했다가 삭직 당하고, 이해 다시 기용되었으나 사직했다. 희빈 장씨의 강호(降 號)를 반대하는 상소를 하는 등 당파와는 상관없이 자기의 뜻을 기탄 없이 토로했다. 유일(遺 逸)로 천거되어 집의 사업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독학으로 성리학을 연구, <사칠변증(四七辨證)>을 지었고, 원주에서 효도 후진양성 그리고 농사에 열중했다. 1686년 조정의 부름도 뿌리치고 2년 동안 강원, 경상, 전라, 충청 각도의 명승 사찰을 두루 유람하고, <산중일기(山中日記)>를 썼다. 여기에 기록된 각 사찰의 불상 화 정(畵幀) 석탑 경판(經板) 등은 그 당시 사찰의 정황을 연구하는 데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 다. 그의 학문은 훗날 다산 정약용(丁若鏞) 성호 이익(李瀷) 등에게 영향을 미쳤다. 저서로는 우담집(愚潭集)이 있다.

정시윤(丁時潤) : 1646~1713 자는 자우(子雨), 호는 두호(斗湖)이다. 1690년 식년문과에 급제, 삼사의 벼슬을 두루 역임했다. 갑술옥사 때 삭직 되었다가 1698년데 다시 기용되어 병조참 의에 이르렀다. 글로는 압해도성묘기(押海島省墓記)가 있다.

정창도(丁昌燾) : 1623~1687 자는 사원(士元) 호는 덕암(德巖)이다. 대과에 급제한 후로 홍문 관 부제학, 공 형 병조의 참의와 황해도 감사(監司)를 지냈다. 나주정씨 해영보(海營譜) 발간 에 공이 컸다.

정사신(丁思愼) : 1662~1687 자는 성공(聖功), 호는 기수(琦叟)이다, 대과에 급제 후 정언 수 찬을 역임하고 갑술 옥사로 남인이 실각하자 권대운(權大運) 목래선(睦來善)을 소구(疏救)하 다가 파직, 문회출송(門外黜送) 되었으나 다시 등용되어 공조 참의를 역임했다.

정도복(丁道復) : 1666~1720 자는 내중(來仲)이다. 별시 문과에 급제한 후 태안군수 3년간 잘 다스려 치적을 쌓았고 안주(安州) 춘천에서도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웠다. 홍문 관에 있을 때 경연관(經筵官)이 되어 왕의 찬사를 받았고 공조참의 좌승지 등을 역임했다.

정범조(丁範組) : 1723~1801 자는 법세(法世), 호는 해좌(海左)이다. 1763년 증광문과에 급제 지평 정언을 지낸뒤 사가독서(賜暇讀書)했다. 그 후 대사간 대사성 이조참의 한성부윤 대사 헌 개성부유수 이조참판 형조참판 예문관제학을 거쳐 형조판서를 지냈다. 1800년 지실록사 (知實錄事)로서 정조실록(正祖實錄) 편찬에 참여했다. 당대의 대문자가로 시호는 문헌(文憲)이 다. 저서로는 해좌집(海左集)이 있다.

정재원(丁載遠) : 1730~1792 자는 기백(器伯), 호는 성암(省菴)이다. 화순과 진주목사를 지냈 다. 글로는 진주석갑산정씨분산변(晉州石岬山丁氏墳山辨)이 있다.

정약전(丁若銓) : 1758~1816 자는 천전(天全) 호는 일성루(一星樓), 매심제(每心齊), 손암(巽 菴). 1790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조좌랑을 역임하였고 1798년 왕명으로 영남인물고(嶺南 人物考)를 편찬하고 또 서양의 역수학(歷數學)을 접하고 천주교 교리에 끌려 벼슬을 버리고 은퇴. 1801년 천주교 박해 때 흑산도(黑山島)에 유배되었다가 16년 만에 별세했다. 저서로 자산어보(慈山魚譜)가 전한다.

정약종(丁若鍾) : 1760~1801 자는 양중(養重), 1791년 천주교박해 때,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1795년 이승훈(李承薰)과 함께 주문모(周文謨)신부가 입국한 후 명도회장(明道會長)으로 임명 되었고 천주교 선교에 큰 공을 세웠다. 후에 이승훈(李承薰) 최창현(崔昌顯) 등과 함께 서소 문밖에서 순교하였다. 1984년 로마교황 요한바오로 2세 방한 시에 순교자 103위 시성식 때 천주교 성인으로 알성(謁聖).

정약용(丁若鏞) : 1762~1836 자는 미용(美庸) 송보(頌甫) 처음 자는 귀농(歸農), 호는 다산(茶 山) 삼미(三眉) 여유당(輿猶堂) 사암(俟菴)으로 재원의 아들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1776년 상 경, 이듬해 이익(李瀷)의 유고를 보고 민생을 위한 경세의 학문에 뜻을 두고 이벽(李蘗)으로 부터 서학(西學)을 배웠다. 1789년 식년문과에 급제, 수찬을 거쳐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 연천현감 서용보(徐龍輔)를 파직시켰으며, 이듬해 동부승지 병조참의가 되었으나 주문모(周文 謨) 사건에 연루되어 금정도(金井道) 찰방으로 좌천되었다. 병조참의 형조참의 등을 지내며 규장각의 편찬사업에 유득공(柳得恭) 박제가(朴齊家)등과 함께 참여했다, 1799년 공서파(攻西 派)로부터 서학문제로 탄액을 받자 자명소(自明疏)를 올리고 사직, 1801년 신유박해 때 장기 (長䰇)로 유배된 뒤에 황사영(黃嗣永) 백서사건(帛書事件)으로 강진으로 이배되어 다산 기슭 에 있는 윤박(尹博)의 산정에서 18년간 학문에 전념, 많은 저술을 했다. 1818년 이태순(李泰 淳)의 상소로 풀려나와 고향에서 저술생활로 여생을 보냈다.

그의 학문체계는 사상적으로 유형원(柳馨遠)과 이익(李瀷)의 주류를 계승하여 유학의 정신체 계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다분히 양명학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며, 이이(李珥)의 주자학적인 실천윤리와 홍대용(洪大容) 박지원(朴趾源) 박제가(朴齊家) 등 북학파의 사상을 흡수, 집대성 했고, 이기론에 있어서 이황(李滉)과 이이의 학설을 합성하고 있다. 1910년 규장각 제학(提 學)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저서로는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가 있다.

정학유(丁學游) : 1786~1855 자는 치구(穉求), 호는 운포(耘逋) 다산 정약용의 둘째아들이다. 1816(순조16)에 한해동안 힘써야 할 농사일과 철마다 알아두어야 할 풍속 예의범절 등을 518구의 국한문혼용으로 된 운둔체로 기록한 농가월령가를 지었다. 농업기술의 보급을 처음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정하상(丁夏祥) : 1795~1839 자는 가록(嘉祿) 교명 바오로, 1816(순조16) 동지사(冬至使)를 따라 북경에 가 그곳 주교를 만나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음. 1823년부터는 유진길 조신철(趙 信喆)을 밀사로 파견하여 북경교회와의 교섭을 계속하였다. 1925년 로마교황에 의하여 복자 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로마교황 요한바오르 2세 방한시에 천주교 성인으로 시성(諡聖) 되었다.

정학교(丁學敎) : 1832~1914) 일명 학교(鶴喬), 서화가, 자는 화경(花鏡), 호는 향수(香壽) 몽 인(夢人) 몽중몽인(夢中夢人), 군수를 지냈고, 글씨는 전서 예서 해서 초서가 모두 묘경(妙境) 에 이르렀으며, 그림은 괴석 난초 대나무를 잘 그렸다.

정대유(丁大有) : 1852~1927 서예가, 호는 우향(又香) 학교(學敎)의 아들, 서예대가로 조선미 술전람회 제1회부터 심사위원을 지냈고 예서와 행서를 잘 썼으며, 매화에도 뛰어났다.

 

조선조 급제자 정록

자급(子伋): 세조(世祖) 5· 평양별시(平壤別試 · 을과(乙科)

수곤(壽崑): 성종(成宗) 2· 식년시(式年試) · 병과(丙科)

수강(壽崗): 성종(成宗) 8· 식년시(式年試) · 을과(乙科)

옥형(玉亨): 중종(中宗) 8· 식년시(式年試) · 병과(丙科)

응두(應斗): 중종(中宗) 29· 식년시(式年試) · 갑과(甲科)2

윤희(胤禧): 명종(明宗) 11· 알성시(謁聖試) · 갑과(甲科)장원

윤희(胤禧): 명종(明宗) 21· 중시(重試) · 갑과(甲科)장원

윤복(胤福): 명종(明宗) 22· 식년시(式年試) · 을과(乙科)

윤우(允祐): 선조(宣祖) 3· 식년시(式年試) · 병과(丙科)

호선(好善): 선조(宣祖) 34· 식년시(式年試) · 을과(乙科)

호관(好寬): 선조(宣祖) 35· 별시(別試) · 을과(乙科)

호공(好恭): 선조(宣祖) 38· 증광시(增廣試) · 병과(丙科)

호서(好恕): 광해군즉위(光海君卽位) · 별시(別試) · 갑과(甲科)장원

언황(彦璜): 인조(仁祖) 6· 별시(別試) · 병과(丙科)

언원(彦瑗): 인조(仁祖) 17· 별시(別試) · 병과(丙科)

언벽(彦壁): 인조(仁祖) 22· 별시(別試) · 병과(丙科)

창도(昌燾): 효종(孝宗) 3· 증광시(增廣試) · 을과(乙科)

도겸(道謙): 현종(顯宗) 3· 증광시(增廣試) · 병과(丙科)

시윤(時潤): 숙종(肅宗) 16· 식년시(式年試) · 을과(乙科)

사신(思愼): 숙종(肅宗) 17· 증광시(增廣試) · 병과(丙科)

도명(道明): 숙종(肅宗) 19· 별시(別試) · 병과(丙科)

도복(道復): 숙종(肅宗) 20· 별시(別試) · 병과(丙科)

도휘(道徽): 숙종(肅宗) 20· 별시(別試) · 병과(丙科)

유신(惟愼): 숙종(肅宗) 25· 식년시(式年試) · 갑과(甲科)2

석천(錫天): 영조(英祖) 9· 식년시(式年試) · 병과(丙科)2

석부(錫璷): 영조(英祖) 9· 식년시(式年試) · 병과(丙科)2

희신(喜愼): 영조(英祖) 14· 식년시(式年試) · 병과(丙科)

지복(志復): 영조(英祖) 20· 식년시(式年試) · 병과(丙科)

범조(範祖): 영조(英祖) 39· 증광시(增廣試) · 갑과(甲科)2

지원(志元): 영조(英祖) 41· 식년시(式年試) · 을과(乙科)

재운(載運): 영조(英祖) 50· 식년시(式年試) · 진과(進科)

현조(俔祖): 정조(正祖) 1· 증광시(增廣試) · 병과(丙科)

약용(若鏞): 정조(正祖) 13· 식년시(式年試) · 갑과(甲科)2

약전(若銓): 정조(正祖) 14· 증광시(增廣試) · 병과(丙科)

재묵(載黙): 정조(正祖) 16· 식년시(式年試) · 병과(丙科)장원

재욱(在昱): 정조(正祖) 19· 식년시(式年試) · 병과(丙科)

약수(若琇): 정조(正祖) 22· 식년시(式年試) · 병과(丙科)

상교(庠敎): 순조(純租) 27· 증광시(增廣試) · 병과(丙科)

의연(義衍): 헌종(憲宗) 5· 정시(庭試) · 병과(丙科)

집교(集敎): 헌종(憲宗) 9· 식년시(式年試) · 병과(丙科)

관섭(觀燮): 철종(哲宗) 13· 정시(庭試) · 병과(丙科)

준교(浚敎): 고종(高宗) 4· 식년시(式年試) · 병과(丙科)

홍섭(弘燮): 고종(高宗) 13· 식년시(式年試) · 병과(丙科)

준섭(駿燮): 고종(高宗) 17· 증광시(增廣試) · 병과(丙科)

규회(奎會): 고종(高宗) 19· 증광시(增廣試) · 병과(丙科)

이섭(理燮): 고종(高宗) 22· 증광시(增廣試) · 병과(丙科)

대건(大乾): 고종(高宗) 24· 정시(庭試) · 병과(丙科)

문섭(文燮): 고종(高宗) 25· 별시(別試) · 을과(乙科)

순교(洵敎): 고종(高宗) 27· 기로응제(耆老應製) · 병과(丙科)

규년(奎年): 고종(高宗) 28· 증광시(增廣試) · 병과(丙科)

 

벌열(閥閱)

*봉군(封臣)

정옥형(丁玉亨) : 추성정난위사삼등공신(推誠定難衛社三等功臣) 봉 금천군(錦川君)

정응두(丁應斗) : 승습(承襲) 봉 금계군(錦溪君)

 

*공신(功臣)

정수강(丁壽崗) : 중종반정(中宗反正)정국공신원종훈일등(靖國功臣原從勳一等)

정옥형(丁玉亨) : 명종조 위사 3등공신

정윤우(丁允祐) : 임진왜란(壬辰倭亂)선무공신원종훈일등(宣武功臣原從勳一等)

정윤복(丁胤福) : 동 상

정호공(丁好恭) : 동 상

정호관(丁好寬) : 동 상

정호선(丁好善) : 이몽학(李夢鶴)의 난청난공신원종훈일등(淸難功臣原從勳一等)

정언규(丁彦珪) : 인조반정(仁祖反正)정사공신원종훈일등(靖社功臣原從勳一等)

정재흥(丁載興) : 이인좌(李麟佐)의 난분무공신원종훈일등(奮武功臣原從勳一等)

 

*문형(文衡)

정응두(丁應斗) : 중종조

정윤희(丁胤禧) : 명종조

정범조(丁範祖) : 숙종조

정약용(丁若鏞) : 영조조

 

*호당(湖堂)

정응두(丁應斗) : 중종조

정윤희(丁胤禧) : 명종조

정범조(丁範祖) : 영조조

 

*경연(經筵)

정시한(丁時翰) : 숙종조 진선(進善

 

*청백리(淸白吏)

정수강(丁壽崗) : 성종조

정윤희(丁胤禧) : 명종조

정호선(丁好善) : 선조조

정범조(丁範祖) : 영조조

정약용(丁若鏞) : 정조조

 

*시호(諡號)

정옥형(丁玉亨) : 공안(恭安). [尊賢讓善 寬柔和平 爲恭安]

정응두(丁應斗) : 충정(忠靖). [廉方公正 秉德安衆 爲忠靖]

정범조(丁範祖) : 문헌(文憲). [博學多見 行善可紀 爲文憲]

정약용(丁若鏞) : 문도(文度). [道德博文 心能制義 爲文度]

 

유적(遺蹟)

*시조묘(始祖墓)

: 실전(失傳). 제일리 선영에 설단(設壇)

*재우(齋宇)

: 추원재(追遠齋) · 초암공별묘(草庵公別廟

· 대사헌정윤복신도비각(大司憲丁胤福神道碑閣)

· 봉산서원(鳳山書院) · 검암정사(儉巖精舍)

· 광암사(光岩祠) · 능내사우(陵內祠宇)

· 봉강서당(鳳岡書堂) · 신도비각(神道碑閣)

*()

시조(始祖) 검교대장군 윤종제단(允宗祭壇)

· 월헌공신도비(月軒公神道碑) · 공안공신도비(恭安公神道碑) · 충정동신도비(忠靖公神道碑)

경기도지정 문화재(91)

: · 대사헌공신도비(大司憲公神道碑 · 동원공신도비(東園公神道碑)

· 정도복송덕비(丁道復頌德碑) 용인시지정 문화재(92)

*향사(享祀)

: 매년 음 103(용인시 양지면 제일리)

927(영월군 김삿갓면 대야리)

105(예천군 지보면 매창리 매화촌)

 

문집(文集)

월헌집(月軒集) : 정수강(丁壽崗)

우담집(愚潭集) : 정시한(丁時翰)

해좌집(海左集) : 정범조(丁範祖)

자산어보(玆山魚譜) : 정약전(丁若銓)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 정약용(丁若鏞)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마과회통(麻科會通)

상서고훈(尙書古訓), 역학서언(易學緖言),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아언각비(雅言覺非) 외 다수

 

족보(族譜)

월헌첩(月軒帖) : 중종 연간 정수강(丁壽崗)

수촌록(水村錄) : 인조 연간 정언선(丁彦璿)

나주압해정씨술선록(羅州押海丁氏述先錄) : 현종 1, 1660 정시걸(丁時傑)

해영보(海營譜) : 숙종 4, 1678 정창도(丁昌燾)

순천보(順天譜) : 숙종 28, 1702 정시윤(丁時潤)

경오보(庚午譜) : 고종 7, 1870 정순교(丁洵敎)

신미보(辛未譜) : 1931

신축보(辛丑譜) : 1961

기묘보(己卯譜) : 1999

 

현대 인물(現代 人物)

<교리공파(校理公派>

정영섭(丁榮燮) : 경제학 박사, 건국대학교 교수

정운섭(丁雲燮) : 변호사, 법무법인 동인, 뉴욕주 변호사

정신영(丁信榮) : 의학박사, 경북의대 교수

정대천(丁大天) : 3,4대 국회의원, 한국노총 최고위원

정호영(丁護榮) : 공학박사, 한국전자통신 연구원, 음성언어정보 연구원

정준영(丁俊榮) : 공학박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방송통신 미디어연구소 책임연구원

정한영(丁漢榮) : 공학박사, 삼성디스플레이주식회자 책이연구원

정준영(丁俊榮) : 문학박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정규동(丁奎童) : 공학박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도로연구소 수석연구원

정규갑(丁奎甲) : 대한석유공사 부장, 대한송유관공사 본부장, 대운명리학회 대표

정도영(丁渡榮) : 향토사학자, 미림주택 대표,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정희일(丁熹一) : 치의학박사, 원광대학교 교수, 강원치과협회 부회장, 동해시영동치과의원 원장

 

<월헌공파(月軒公派>

정명식(丁明植) : 포스코 회장, 포스텍 이사장

정범진(丁範鎭) : 문학박사, 성균관대학교 총장, 한시협회 회장

정상진(丁尙鎭) : 문학박사, 현대문집 연구소장

정수영(丁琇永) : 문학박사, 미국오하이오주 데이튼대학교 교수

정해득(丁海得) : 문학박사, 한신대학교 교수

정종한(丁鍾漢) : 공학박사, 창원전문대학 교수, 특허청 공업서기관

정세진(丁世眞) : 문학박사, 한양대학교 교수

정규환(丁奎煥) : 공학박사,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연구실장, 한국과학기술연합대학원 교수

정강진(丁康鎭) : 의학박사, 미국 텍사스 휴스턴 M.D Anderson Cancer Center 연구원

정영식(丁寧植) :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정해서(丁海瑞) : 현대기계상사 창업, 유승산업주식회사 대표이사

정해창(丁海昌) : 검사장, 법무부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다산학술문화재단 이사장

정형진(丁亨鎭) : 육군소장, 육군정보사령부 참모장, 김포대학교 석좌교수

정경숙(丁璟淑) : 문학박사, 국립강릉원주대학교 교수

정상진(丁祥鎭) : 세무사, 국세청 근무, 세무법인다산 세무사

정장진(丁長鎭) : 의학박사, 국민훈장 목련장, 가봉공화국 열대십자성훈장

정요진(丁堯鎭) : 경영학박사, 솔브릿지 국제경영대 교수

정해창(丁海昌) : 국제변호사, 미연방법원 검사, 로펌 변호사

정영미(丁榮美) : 불문학박사, 불문학 작가

정영미(丁榮美) : 화학박사, STN KOREA 대표

정효영(丁孝榮) : 생화학박사, 오송 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신약개발지원센터 책임연구원

정창영(丁昌榮) : 약학박사, 재미 회사원

정해원(丁海元) : 변호사, 정해원 법률사무소 대표

정순용(丁淳溶) : 공학박사, 부산정보대학교 교수

정해일(丁海逸) : 의학박사, 제일병원 정형외과 과장, 이디대정형외과 원장

정해조(丁海祚) : 문학박사, 공학박사, 독일본대하교 교수,국제지역학회장,부경대학교 교수

정해주(丁海珠) : 변호사, 정해원 법률사무소 대표

정서윤(丁瑞潤) : 변리사, 한알국제특허사무소

정해욱(丁海旭) : 경영학박사, 서울지방세무사회 부회장, 가천대학교 교수

정재환(丁在奐) : 문학박사, 방송사회자, 성균대학교 교수,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정해륜(丁海崙) : 의학박사, 대한안과학회 이사장, 고려대학교 교수, 의과대학장,

정규석(丁奎錫) : 공학박사, LG전자 사장, 한독미디어대학 재단이사 및 교수

정세빈(丁世彬) : 의학박사, 삼성병원, 아산병원, 수원중앙병원 근무

정치영(丁致榮) : 의학박사, 경남 마산 동서병원 신경정신과장

정영록(丁暎錄) : 공학박사, 이피에스엠이 대표이사, 국제냉동협회 전문위원

정경환(丁敬丸) : 의학박사,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경희의료원 신경내과 과장

정강진(丁康鎭) : 의학박사, 미국 M’D Anderson cancer R-S 선임연구원

 

<야은공파(野隱公派>

정형진(丁炯鎭) : 공학박사, 한국과학기술원 부원장, 무궁화총연합회 회장

정규상(丁奎祥) : 3,4대 국회의원

정승진(丁升鎭) : 공학박사, 삼성물산()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