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나주정씨시조(羅州丁氏),정윤종(丁允宗)

작성일 : 2018-03-16 18:10

나주정씨(羅州丁氏)의 연원

1) 관적지(貫籍地)

나주정씨의 본관은 원래 압해(押海)였다. 압해는 전라남도 무안군에 속해 있는 면 단위의 섬이다. 배제 때에는 아차산(阿次山)군이었고, 통일신라 때는 산세가 바다를 압도한다는 뜻으로 압해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고려로 들어와서는 나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뒤에 한 때 영광군(靈光郡)에 예소되었고, 얼마 후에 다시 나주로 귀속되었다.

그 후 고려 말엽 이래로 왜구의 침략이 심해지자 조선 태종 9년(1409)에 감사 윤향(尹向)이 도내 주읍(主邑)에 소속되어 있던 속현(屬縣) 향(鄕) 소(所) 부곡(部曲)을 모두 폐지하여 주읍으로 통폐합 시켰다. 이 때 나주목 관내의 토착성씨들은 종전의 소지역 본관에서 나주라는 대지역 본관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압해정씨도 본관을 나주 또는 압해로 겸용해 오다가, 영조(英祖)때에 이르러서는 압해가 폐읍이 되었다는 이유에서였던지 압해를 버리고 나주를 본관으로 삼아 최근까지 약 200여 년을 사용해 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압해를 더 중요시해야 한다는 인식이 새롭게 대두되어 더러는 압해정씨 또는 나주압해정씨 등으로 혼용하고 있다. 구체적인 원적지를 따지자면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하겠지만 그러나 지금에 와서 나주를 버리고 압해로 복귀한다는 것은 기실 행정절차나 그 동안 사용해온 인습에 비추어 볼 때, 그렇게 쉽게 고쳐질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종회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본관을 나주정씨로 쓰고 있다.

2) 세거지(世居地)

나주정씨는 원래 토성으로 압해를 근거지로 당지의 호족(豪族)으로 살았다. 시조 정윤종(丁允宗) 이래 제 6세(公逸)에 이르기까지는 계속 압해에서 살았고, 분묘도 다 그곳에 있을 터이나 애석하게도 지금은 다 실전된 상태이다. 그 후 7세(元甫) 때에 이르러 검교호군(檢校護軍)이라는 명예직 무관벼슬을 얻은 것을 계기로, 비로소 개경(開京)으로 올라와 부근 덕수(德水)로 옮겨 살았다. 그 후 9세조(安景) 때에 와서 황해도 배천(白川)으로 옮겨 살았는데 이때부터 제 2의 세거지가 형성되고 분묘도 제대로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나주정씨는 압해도를 연원지로 점진적으로 도시를 향하여 사족화(士族化)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조선조로 들어와서는 마침내 문중에서 이상(貳相) 서열의 고위 관료를 배출하는 한양의 유명 가문으로 자리잡으면서, 경기도 고양의 토당리와 행신리 일대에 제 2의 세거지 및 세장지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수백년을 거쳐오는 동안 자손들의 번창과 생활영역의 확산으로 인하여 전국 각지로 분거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3) 시조(始祖)

나주정씨의 시조는 고려 중엽의 검교대장군 정윤종(丁允宗)이다. 우리나라에 족보가 있기 시작한 것이 1476년(성종 7) 무렵이었으니까 그때부터 소급한다 하더라도 최고 약 300년 이상의 조상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잘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나주정씨도 최초의 가첩인 월헌첩(月軒帖)이 약 1520년(중종 12) 전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고려 중기의 정윤종을 시조로 적어놓은 것은 매우 신빙성이 있는 기록이라고 하겠다. 보학자드의 일관된 주장도 왕실을 제외하고 사가성(私家姓)의 시조추적은 그 상한선을 최고로 잡더라도 고려 초기를 넘을 수 없다고 단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더 오문(吾門)의 역대 족보의 기록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시조의 당대(唐代)동래설(東來說)이 있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이미 약 200년전에 해좌(海左) 정범조(丁範祖).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등 지난날 오족(吾族)의 선조 석학들이 너무도 분명하게 변증해 놓은 바가 있었고, 최근에 와서도 이 문제에 관해서 몇몇 권위있는 학자들이 "나주정씨 상계연구" 라는 논문집에서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서 입증한 바가 있다.

4) 세장지(世葬地) 선영(先塋)

역대 세거지에 따른 세장지도 여러 곳 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1) 황해도 배천의 강서와 율학

(2) 경기도 고양시 지도면의 토당리

(3) 충북 음성군 원남면의 조촌리

(4) 경기도 지도면 행신리 무원

(5)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면 부제곡

(6)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대야리

(7)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8)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백현(성남시)

(9) 경북 예천군 용문면 내지동

(10) 경기도 용인 포곡면 전대리 부곡

(11) 경북 청도군 금천면 임당동

(12) 충남 예산군 응봉면 지석리 북록

(13)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 사악

(14) 충남 천안시 불록동 후록

(15) 경북 울산군 두서면 복안리

(16) 경기도 시흥시 수암면 양상리

(17) 경기도 화성군 반월면 사사리

(18) 경기도 고양시 벽제읍 관산리

(19) 경북 청도군 금천면 등곡동 선자동

(20) 경북 문경군 갈벌 탑거리

(21) 강원도 원성군 부론면 법천리 곡촌

(22) 경기도 시흥시 의왕면 학의리 필동

(23) 경기도 개성군 서면 광정리

(24)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선도동

(25) 경북 영주시 상줄동 금당

(26) 경북 영주시 상줄동 여아

(27) 경기도 파주군 금촌읍 야동리

(28)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 두송리

(29)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 유리

(30)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주암리

(31) 충남 서천군 기산면 영막리

(32) 경북 예천군 감천면 공현동

(33) 경북 선산군 해평면 송곡동

(34) 충남 서천군 화양면 기복리

(35) 강원도 원성군 부론면 법천리 개치동

(36)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면 마현

(37) 경북 성주군 용암면 죽전리

(38) 경기도 안양시 포이동 덕장골

이중에서 경기도 고양시 지도면 일대에 있던 분묘는 지난 1988년에 도시계획으로 말미암아 부득이 모두 경기도 양지(陽智)의 제일리(霽日里)로 이장하였다. 제일리에는 그 해 대규모의 선영(先塋)을 새롭게 조성하여 시조의 제단을 위시하여 월헌공 정수강(丁壽崗), 문화공 정옥경(丁玉卿), 공안공 정옥형(丁玉亨), 참봉공 정응허(丁應虛), 충정공 정응두(丁應斗), 우봉공 정윤지(丁胤祉), 전첨공 정윤조(丁胤祚), 병사공 정호서(丁好恕), 별제공 정호인(丁好仁)과 그 배위를 다 함께 모셔 놓았다. 그래서 나주정씨의 또 하나의 성역, 즉 영적 안식처로 자리 잡았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나주정씨(羅州丁氏)는 전국 125,08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