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진주형씨시조(晋州邢氏),형옹(邢顒)

작성일 : 2018-03-10 19:29 수정일 : 2018-09-04 15:30

진주형씨의 연원(晋州邢氏의 淵源)

형씨(邢氏)의 유래는 서주(西周) BC1057~BC771년 무왕(武王)의 동생 휘(諱) 단(旦)의 건국호(建國號)는 주공(周公)이며 넷째아들 휘(諱) 정연(靖淵)을 형후(邢候)에 봉하여, 형나라(邢國)을 세웠던 후 오랜 세월을 거쳐 후손인 휘(諱) 옹(顒)은 중국 당(唐)나라 태종정관(太宗貞觀) 8년이고 고구려(高句麗) 영류왕(榮留王) 17년(서기634년) 영류왕의 요청에 의하여 8학사에 공을 세우고 벼슬이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보국(輔國)을 지냈으며 관향(貫鄕)을 남양(南陽=현재수원부근)으로 사향 받았다.

그런데 중시조(中始祖) 휘(諱) 병(昞)을 1세(世)로 삼은 15세손 공미(公美=忠宣公)는 충렬왕(忠烈王) 6년(서기 1280년) 문하성(門下省)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도원수(都元帥)가 되어 왜구(倭寇)를 정벌하는데 공을 세워 지밀직사(知密直事)로 일등공신에 책록되어 진양군(晋陽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진양(晋陽)은 현재의 진주(晋州)이기에 진주를 본관(本貫)으로 삼아왔고 진양을 본관으로 삼고 있는 곳도 있으나 우리 형씨는 단일본(單一本)이다.

그리고 시조 휘(諱) 옹(顒)께서 고구려에 입국한 후부터 신라시대까지 300여년 간의 조상의 행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고서(古書)를 얻지 못하여 후대에 과제로 남기어 아쉽기만 하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진주형씨는 전국에 5,45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