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성산이씨시조(星山李氏),이능일(李能一),성산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8-03-06 17:44 수정일 : 2018-08-23 10:15

성산이씨의 연원(星山李氏의 淵源)

성산이씨의 시조 휘 능일(能一)은 나말(羅末) 여초(麗初)에 지용(智勇)을 겸전한 장수로서 성산(星山=現 星州) 일대를 통치해온 지방 호족이다.

고려태조 8년(925) 겨울에 왕이 견훤(甄萱)을 정벌하기 위하여 군사를 이끌고 조물군(曹勿郡: 현 경북 서북부지방)에 이르러 시조공을 본부장군(本部將軍)으로 삼으니 시조공은 최언(崔彥)과 더불어 민병(民兵) 600여명을 거느리고 견훤을 토벌하는 등 12년 동안 왕건을 도와 후삼국(後三國)을 수훈(殊勳)을 세웠다.

태조가 천수(天授) 19년(936)에 삼한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고 공신들에게 대상(大賞)을 내릴 때 우리 시조공의 좌명(佐命)의 공을 높이 찬양하여 초휘(初諱) 능(能) 자에 삼한통일의 일(一)자를 가하여 능일(能一)로 사명하고 벼슬을 정일품인 개국벽상좌명공신(開國擘上左命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사공(司空)으로 높이고 왕녀 정순대장궁주(淨順大長宮主)와 짝지어 부마(駙馬)로 삼았다.

태조 23년(940)에 개경 신흥사(新興寺)에 공신당(功臣堂)을 짓고 당내 동서 벽상에 삼한통일의 좌명공신(佐命功臣)들의 화상(畵像)을 그릴 때 시조공의 화상도 함께 그려졌으며 전국의 주군제도(州郡制度)를 개혁할 때 시조공의 공훈을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공의 소거지인 성산, 신안, 적산, 수동, 계자 등 오현(五縣)을 통합하여 경산부(京山府)로 승역하고 경산부의 으뜸인 성산군을 봉지(封地)로 삼아 성산군으로 봉하였으니 이로 인하여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성산(星山)으로 하였다.

이후 천여 년 동안 많은 자손이 시조공의 위훈(偉勳) 여렬(餘烈)을 계계승승(繼繼承承)하여 홍유(鴻儒) 거작(巨爵)과 효행(孝行) 충절(忠節)이 세세(世世) 접종(接踵)하여 국가 사회에 이바지하고 크게 문호를 빛냈다.

조선조 숙종 6년(1680)에 성주목사 신학(申㶅)의 꿈에 신령스런 위장부(偉丈夫)가 나타나 '이곳 사창(司倉)의 자리는 나의 소거지로 내가 늘 마시던 음정(飮井)이 있는데 허다한 우마(牛馬)의 잡답으로 더러운 웅덩이가 되었으니 성주(城主)는 부디 깨끗하게 해달라' 고 하였다. 신목사는 꿈에서 깨어나 이상하게 생각하여 옛 관원에 물어 영(令)으로 우물을 준설한 후 돌로서 우물벽을 쌓고 정각(井閣)을 세워 이공신정(李公神井)이라 현판을 걸었는데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지금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성주군청 서남쪽에 위치한 약 2,000평의 대지에는 시조공과 그 오대손 고려 대상경(大常卿) 휘 견수(堅守)를 봉향하고 있는 경원사(景源祠)를 비롯하여 성산재, 저존당, 유비허, 통승루 등이 있으며 특히 이공신정은 문화재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현재 성산이씨의 인구 분포는 성주를 비롯하여 고령, 영천, 달성, 김천, 의성, 칠곡, 경주, 상주, 청도, 영일, 합천, 창녕 등지에 취락하여 세거하고 있으며 대구, 부산, 서울 등 대도시에 많이 진출하여 활약하고 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성산이씨는 전국에 113,08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