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삼척진씨시조(三陟陳氏 始祖),진경(陳鏡)

작성일 : 2018-03-01 18:02

시 조

삼척진씨시조(三陟陳氏 始祖) 진경(陳鏡)은 고려 태조조(太祖朝)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시중(侍中)․ 상서(尙書)․ 태보(太保) 등을 역임하고 이어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랐다.

그의 선계(先系)는 상고(詳考)할 수 없으나, 경(경)의 16세손 의(懿)가 1296년(충렬왕 2) 삼척군(三陟郡)에 봉(封)해진 것과, 조선(朝鮮) 초에 의주 병마사(義州兵馬使)를 역임한 충귀(忠貴)의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 녹권(錄券)에 본관(本貫)이 삼척(三陟)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누대에 걸쳐 삼척을 본관으로 세계(世系)를 이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여양진씨(驪陽陳氏) 족보를 살펴보면 여양군(驪陽郡) 총후(寵厚)의 증손 택(澤)이 삼척군(三陟郡) 의(懿)의 정조라 하여 한 할아버지의 후손이라 하였으나 1979년에 수보(修譜)된 삼척진씨 족보에 의하면 여양군(驪陽郡) 총후(寵厚)의 증손 택(澤)이 삼척군(三陟郡) 의(懿)의 증조라 하여 한 할아버지의 후손이라 하였으나, 1979년에 수보(修譜)된 삼척진씨 족보에 의하면 여양진씨의 주장은 전후(前後) 계대가 맞지 않으므로 이를 부인(否認)하고 있다.


본관의 유래

삼척은 강원도 남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실직국(悉直國)이었는데, 102년(신라 파사왕 23)에 신라에 병합되었고, 505년(지증왕 6) 실직구라 하였으며 경덕왕 때 삼척군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 삼척현으로 강등되었다가 조선 태조때 삼척부로 승격하고, 1404년 도호부가 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지금의 삼척군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조선 개국공신 충귀(忠貴)의 증손(曾孫) 암수(巖壽)가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연산군 때 임천 군수(林川郡守)를 역임하였고, 그의 아들 3형제가 모두 학문(學問)에 뛰어났는데 특히, 둘째 아들 극효(克孝)는 학행(學行)이 뛰어나 사림(士林)의 추앙을 받았다. 셋째 아들 극성(克誠)은 조선조에 만호(萬戶)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영암(永闇)은 지극한 효행(孝行)으로 정려(旌閭)가 내려져 가문을 빛나게 하였다.

그 밖에도 광해군(光海君)의 혼정(昏政)을 개탄하고 사퇴했다가 인조반정 후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오른 여기(汝起)와 숙천 부사(肅川府使) 재성(再成), 지극한 효성으로 8년간이나 어버이의 병구환을 한 성진(聖鎭), 이조참판(吏曹參判) 행은(行殷) 등이 삼척진씨의 대(代)를 이어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삼척진씨는 전국에 10,25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