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충주김씨시조(忠州金氏 始祖),김남길(金南吉),충주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8-02-28 22:14 수정일 : 2018-02-28 22:24

시 조

충주김씨시조(忠州金氏 始祖) 김남길(金南吉)은 경순왕(敬順王)의 세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의 16세손으로 고려조에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으며 나라에 공을 세워 충원군(忠原君)에 봉해졌으므로 관향(貫鄕)을 충주(忠州)로 하게 되었다.


본관의 유래

충주(忠州)는 충청북도(忠淸北道) 중원군(中原郡)의 중앙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 때에는 국원성(國原城) 또는 미을성 (未乙省)․완장성(薍長城)․탁장성(託長城) 등으로 불리우다가 신라에 병합되어 진흥왕(眞興王 : 제 24대 왕, 재위기간 : 534~576) 때 이곳에다 소경(小京)을 두었고 경덕왕(景德王)이 중원경(中原京)으로 고쳤으며, 고려조에 이르러 태조(太祖)가 충주(忠州)로 개칭하였다.

그후 고종(高宗) 때 국원경(國原京)으로 고쳐 불렀고, 1550년(명종 5) 유신현(維新縣)으로 부르다가 조선 선조(宣祖) 즉위년에 다시 충주(忠州)로 환원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시조 남길(南吉)의 현손(玄孫) 만수(萬守)의 아들 도민(道敏)은 1466년(세조 12)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이조 참의(吏曹參議)에 올라 직간(稙諫)을 하다가 평북(平北) 철산(鐵山)으로 유배(流配)되었고, 그후 아우 운민(雲敏)은 함남(咸南) 정평(定平)으로 이거(移居)하였으며, 도민(道敏)의 둘째 아들 양한(亮漢)은 평북(平北) 벽동(碧潼)으로, 세째 양희(亮禧)는 평북(平北) 의주(義州)로 옮겨 살면서 후손들이 관서북 지방(關西北地方)에 많이 살게 되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충주김씨(忠州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10,58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충주김씨조상인물

김진성(金進聲) 조선조에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이르렀다.

김효선(金孝先)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영익(金永益) 조선에서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김정삼(金鼎三) 조선조에 중추부 녹사(中樞府祿事)에 올랐다.

김맹호(金孟浩) 조선 때 전라 감사(全羅監司)를 지냈다.

김맹연(金孟淵) 조선 때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역임하였다.

김중청(金仲淸) 조선 때 춘추관 기사관(春秋?記事官)을 지냈다.

김도민(金道敏) 호는 철관(鐵冠). 1466년(세조 12) 이조 참의(吏曹參議)로 있을 때 왕에게 직간(直諫)을 한 이유로 철산(鐵山)에 유배되었다.

김운민(金雲敏) 조선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을 지냈다.

김건화(金建化) 조선조에 승지(承旨)를 역임하였다.

김양수(金亮水) 호는 수동(水洞). 조선 때 예조 판서(禮曹判書)를 지냈다.

김양한(金亮漢) 호는 벽헌(碧軒). 조선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역임하였다.

김양희(金亮禧) 호는 만와(灣窩). 조선에서 장령(掌令)을 지냈다.

김송산(金松珊) 조선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이르렀다.

김만형(金萬亨) 조선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승지(承旨)를 지냈다.

김세순(金世順) 조선 때 무과에 급제하여 박천 군수(博川郡守)를 역임하였다.

김희준(金熙俊) 조선조에 호조 좌랑(戶曹佐郞)을 역임하였다.

김 수(金 守) 조선에서 은계도 찰방(銀溪道察訪)을 지냈다.

김용우(金龍佑) 조선 때 용양시위사우령호군(龍驤侍衛司右領護軍)을 역임하였다.

김 열(金 冽) 자는 사면(泗綿). 1717년(숙종 43) 문과 급제 후 현감(縣監)을 지냈다.

김병원(金炳垣) 1851년(철종 2)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다.

김대윤(金大胤) 자는 견성(見聖). 1869년(고종 6)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