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거창유씨시조(居昌劉氏),유전(劉筌),거창유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8-02-11 11:59 수정일 : 2018-02-11 12:14

거창유씨시조

유씨(劉氏)는 중국에서 계출된 성씨로 우리 나라 유씨(劉氏)의 연원(淵源)은 유방(劉 邦)의 41세손으로 송나라에서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지낸 유전(劉筌)이 8학사(八學士)의 일원으로 우리 나라에 들어와 경북 영일군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면서 부터이다. 그후 전(筌)의 맏아들인 유견규(劉堅規)가 거타(居陀 : 거창의 옛 지명) 군(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거창(居昌)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界)를 이어왔다.


본관의 유래

거창(居昌)은 경상남도(慶尙南道) 북서부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신라(新羅)의 거열군(居烈郡)인데 경덕왕(景德王)이 거창(居昌)으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합주(陜州 : 합천)에 속하였다가 조선(朝鮮) 태종(太宗) 때 거제현(巨濟縣)과 합하여 제창현(濟昌縣)이 되었다. 후에 다시 거창이 되어 성종(成宗) 때 군(郡)이 되었다가 중종(中宗) 때 현으로 강등, 1658년(효종 9) 안음(安陰)에 편입시켰으며 여러 차례 변화를 거쳐 1895년(고종 32)에 거창군(居昌郡)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인물을 살펴보면 견규의 동생 견구(堅矩)가 대사헌(大司憲)을 지냈으며, 견구(堅矩)의 아들 웅열(雄悅)이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로 아림군(娥林君)에 봉해졌고, 견규(堅規)의 손자 성(成)이 추밀원 부사(樞密員副使)와 대장군(大將軍)을, 증손 찬(贊)이 대사헌(大司憲)을 역임하여 가문을 중흥시켰다.

이외에도 검교 대장군(檢校大將軍)을 지낸 한작(漢灼)과 집현전 대제학(集賢殿大提學)을 역임한 해(海), 그리고 어모장군(御侮將軍)에 이른 귀손(貴孫)이 유명하였으며, 특히 한우(旱雨)는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예조 판서(禮曹判書)를 지낼 때 중국(中國) 황제(皇帝)의 부름에 따라 기우제관(祈雨祭官)으로 판견되어 3일간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니 한재(旱災)가 계속된 중국 대륙(中國大陸)에 비가 내렸다 한다. 이에 황제(皇帝)가 크게 기뻐하여 통헌대부(通憲大夫)․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제수하였다.


거창유씨 인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거창유씨(居昌劉氏)는 남한(南韓)에 27,75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거창유씨조상인물

유견규(劉堅規) 호(號)는 백인당(百忍堂). 고려 때 찬성사(贊成事)․정승(政丞)․평장사(平章事) 등을 지내면서 공(功)을 세워 거타군(居陀君)을 봉(封)해졌다.

유견구(劉堅矩) 고려조(高麗朝)에 대사헌(大司憲)을 지냈다.

유춘무(劉春茂) 자(字)는 피어(避御). 고려(高麗) 때 판삼사사(判三司 事)를 지냈다.

유웅열(劉雄悅) 고려 때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랐으며, 판전리사사 (判典理司事)로 치사(致仕)하였고, 아림군(娥林君)에 봉(封)해졌다.

유 성(劉 成) 고려조에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를 역임하였다.

유광협(劉光叶) 고려(高麗) 때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하였다.

유 찬(劉 贊) 고려(高麗)에서 대사헌(大司憲)을 역임하였다.

유신인(劉辛仁) 고려 때 안렴사(安廉使)를 지냈다.

유한작(劉漢灼) 고려조에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하였다.

유 승(劉 昇) 고려조(高麗朝)에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하였다.

유중식(劉仲式) 고려 때 익림장군(翊林將軍)을 지냈다.

유 해(劉 海) 고려(高麗) 때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하였다.

유 흡(劉 洽) 고려조에 현령(縣令)을 지냈다.

유 연(劉 沿) 고려(高麗) 때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하였다.

유 환(劉 懽) 자(字)는 국로(國老), 호(號)는 영계(瀯溪). 고려말에 도 헌(都憲)을 지내고 조선이 개국되자 고향에 내려가 금원산(金猿山)에 정자(亭子)를 짓고 숨어 살며절의를 지켰다.

유 경(劉 璟) 고려 때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하였다.

유방준(劉妨俊) 고려조에 공조 좌랑(工曹佐郞)을 지냈다.

유 담(劉 覃) 고려(高麗) 때 감찰(監察)을 지냈다.

유귀손(劉貴孫) 자(字)는 유경(有慶), 호(號)는 강정(剛靖). 고려(高麗)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유우안(劉友顔) 자(字)는 명선(明善).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 事)를 지냈다.

유춘정(劉春禎) 자(字)는 경오(慶五). 조선조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 府事)를 지냈다.

유 호(劉 浩) 자(字)는 여대(汝大), 호(號)는 휴당(休堂). 조선조(朝鮮 朝)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유 임(劉 任) 자(字)는 사능(司能), 호(號)는 휴재(休齋).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유만춘(劉萬春) 자(字)는 내실(乃實).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유기남(劉起男) 자(字)는 복후(復後). 조선조(朝鮮朝)에 부호군(副護軍) 을 역임하였다.

유산수(劉山壽) 자(字)는 계보(誡甫), 호(號)는 예촌(禮村). 조선조(朝鮮 朝)에 부사(府使)를 지냈다.

유응조(劉應祚) 조선(朝鮮) 때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지냈다.

유원종(劉元宗) 조선 때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올랐다.

유형귀(劉亨貴) 자(字)는 도건(道乾), 호(號)는 절은(節隱). 고려말에 조 지서 별제(造紙署別提)와 병조 참의(兵曹參議)․상호군(上護軍) 등을 지냈다.

유한우(劉旱雨) 자(字)는 천서(天瑞), 호(號)는 망운(望雲). 16세에 사마 시(司馬試)에 합격하고 그후 문과(文科)에 장원(壯元)하였다. 한무년 간(漢武年間)에 명(明)나라가 크게 가물어 중국(中國)에 황제(皇帝)가 소사(詔使)를 보내어 충효(忠孝)가 뛰어난 사람을 보내도록 하였으므 로 왕(王)이 그를 보냈다.

황제(皇帝)가 그에게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도록 하명하였으므로 7 일간 재계(齋戒)하고 도우(禱雨)하니 3일만에 큰 비가 왔다. 황제(皇 帝)가 기뻐하며 한우(旱雨)라고 사명(賜名)하였고 대한(大旱)에 구름 을 바란다 하여 호(號)를 망운(望雲)이라 하였다.

유 관(劉 瓘) 자(字)는 관리(瓘之). 조선 때 장사랑(將仕郞)에 올랐다.

유우민(劉友閔) 자(字)는 효숙(孝淑). 호(號)는 퇴치당(退治堂). 조선조 (朝鮮朝)에 교위(校尉)를 지냈다.

유개문(劉凱文) 자(字)는 화길(和吉).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유방조(劉邦祚) 자(字)는 화보(華寶) 조선 때 한성부 좌윤(漢城府佐尹) 을 지냈다.

유안조(劉安祚) 자(字)는 극렴(克廉), 호(號)는 삼정당(三正堂). 조선조 (朝鮮朝)에 군기감(軍器監)을 지냈다.

유 정(劉 靖) 조선 때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유언일(劉彦一) 조선조(朝鮮朝)에 덕망(德望) 높은 학자(學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