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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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8-01-23 14:15

배천조씨의 연원

중국 사기와 송사를 상고한 바 조씨의 처음은 중국고대 황제에 이은 전욱부터 그 후손 백익의 13세손 조부를 주목왕이 조성에 후를 봉하였으니 이때 성을 얻게 되었다. 그후 주나라가 쇠퇴하고 진나라가 육국을 평정함에 자손이 분산하였다가 한나라 때에 이르러 경조윤 조광한이 탁군에 세거하였다. 즉 연의 땅이며 조광한의 후송인 희조 휘 조가 생장한 곳이다. 희조는 송 태조의 고조이며 희조로 부터 위왕(일운연의 왕) 덕소에 이르기까지 諱․字․諡號․事蹟․官爵․配位․世次 등이 분명하다.


배천조씨(白川趙氏)의 관향(貫鄕)

백천조씨시조 공화공 휘 지린(조지린-之遴)의 초휘는 유고요 자는 선숙이다.

중국 송태조의 장자인 위왕(일운연의 왕) 덕소는 숙부인 태종 광의가 즉위한 후 태종을 따라 태원 지방의 적란을 평정하던 중 어느 날 밤 태종의 소재가 분명치 않아 군중이 놀라 소란했다.

그래서 참전중인 덕소를 제위에 추대코자 하는 자의 모의가 있었으나 곧 태종의 소재가 밝혀지자 태종이 그 사실을 알고 대노함으로 장차 화가 미칠 것으로 예견되어 적란을 평정하고 돌아온 덕소가 자살함으로 선고에 이어 아들 유고에까지 미칠 것이 예측되어 좌천우위장군의 직을 버리고 전 휘 유고를 지린으로 변명하고 국경을 넘어 고려 경종4년(979)에 황해도 은천현 도태리에 정착했다. 고려 성종 때 벼슬에 오르고 고려 목종 때 금자광록대부 좌복야 참지정사에 이르고, 현종2년에 졸하니 시호를 공화라 증시하고 그 후 시법을 따라 공화로 정하였다.

자손이 번성하여 본관을 백천(은천)으로 삼았다. 본이 백천인 성씨로 조,강,금,유,류,호,오 등 이 있다.


백천군 건치연혁

본래 고구려의 도랍현은 치악성이며, 신라 경덕왕 7년에는 구탁이라 개명하고 해고군(연안) 속현으로 삼았다. 고려 태조 때 처음에는 백주라 하다가 현종 때에 평주에 속했다가 의종은 토산에 중흥궐이란 궁전을 창건하고 개흥부로 승격시켰다.

뒤에 구명 백주로 환원시키고 고종 때에 위사공신 이인식의 향리로서 충익현으로 승격시켰다.

원종은 위사공신 조오의 관향이라 하여 다시 복흥군으로 승격시켰다.

공민왕 때에 경복흥의 이름을 피하여 다시 백주라 고치고 조선 초 태종13년에 백천군의 이름으로 군을 삼아 경기에서 황해도에 이속되었다.


백천조씨 시조 묘단과 유지비

1855년 3월에 황해도 은천면 도태리 고정산록 동쪽 작은 언덕에 시조묘단을 모으고 그 입구에 시조 유지비를 세웠다. (재북)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배천조씨는 전국 75,978명이 살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배천조씨조상인물

고려시대(高麗時代) 인물(人物)

조양유(趙良裕) 자(字):사광(思曠). 고려 덕종․정종(德宗․靖宗) 兩朝에 도첨의평리 찬화익조공신 문화시중(門下侍中) 白川君을 封하다.

조선정(趙先正) 字:聖初, 시호(諡號):문정(文靖). 文宗 때 文科 장원, 은자광록대부(銀紫光祿大夫) 門下侍中 태자태사(太子太師)

조중장(趙仲璋) 字:장옥(章玉), 諡號:강회(康懷). 宣宗元年 金紫光祿大夫 中書文下平章事 判尙書 戶部事上柱國 太子太傳에 이르고 知貢擧(科擧考試官)로 나라의 棟梁之材를 등용하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였다. 高麗 전성기 문화창달에 중추적 역활을 하여 공헌한 바 크다.

조옥(趙 玉) 字:여수(汝綏), 諡號:문성(文成). 익조공신 白川府院君

조문주(趙文冑) 諡號:충무(忠武). 고려 고종 때 몽고 대병의 침입을 몽고왕을 찾아 철수케 했다. 銀靑光錄大夫 銀川府院君 兵部尙書 上將軍

조오(趙 璈) 正憲大夫 동지중추원사. 王을 폐하려는 역신에 반대하다 흑산도로 유배 살해되고 元宗이 復位하여 白川復興府院君에 封하다.

조윤온(趙允瑥) 동지추밀원사 正奉大夫 僉議府監事

조연(趙 涓) 좌우시중 銀川君

조쌍중(趙雙重) 號:휴휴당(休休堂).밀직사 봉익대부 문하우상시(門下右常侍)

조진(趙 珍) 諡號:경열(敬烈). 보승낭장 銀紫光祿大夫 白川君 문하시중

조자룡(趙子龍) 號:태촌(台村), 諡號:문간(文簡). 文科 金紫光錄大夫 門下侍中

조선(趙 瑄) 諡號:정숙(正肅). 文科 금자광록대부 상서(尙書) 좌복야(左僕射)

성주(趙成柱) 文科 찬화공신 匡靖大夫 門下贊成事 銀川君에 封하다.

천주(趙天柱) 諡號:충현(忠顯). 文科 도원수 홍건적 토벌 배천부원군

인주(趙仁柱) 諡號:찬성(贊成). 文科 광정대부 좌찬성사

조종주(趙宗柱) 文科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

조운주(趙雲柱) 文科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

조공(趙 珙) 諡號:문충(文忠). 영삼사(領三司) 銀川府院君 두문동 서원배향

조득주(趙得珠) 文科壯元 동지밀직사사 復興君에 封하다.

조하(趙 何) 諱를 하(瑕)字로도 쓴다. 삼중대광 보국대부 銀川君

조세경(趙世卿) 보국공신(輔國功臣) 정헌대부(正憲大夫) 의정부좌참찬(議政府左參贊)

조원봉(趙元鳳) 군기시소감(軍器寺少監) 충의(忠義)를 지키다 청양에 유배(流配)

조용(趙 庸) 字:중걸(仲傑), 號:낭사(郞舍), 諡號: 문정(文貞). 文科 壯元 삼사도사(三司都事) 대제학(大提學) 도총부사(都摠府事) 이시중(李成桂)과 동맹문(同盟文)을 기초(起草)하고 진보(眞寶)로 낙향. 본관을 眞實로 改本하고 門下生을 敎授하였다.

조휴(趙 休) 文科 전라도안찰사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이조판서(吏曹判書) 강릉대도호부사 유후(留侯)


高麗末의 忠臣, 卓越한 外交家

조반(趙 胖) 號:송암(松菴), 諡號:숙위(肅魏). 고려조에 지밀직사(知密直司). 고려말에 權臣들은 온갖 부정과 횡포가 극심하였다. 백성들은 살길이 막연한데 조세를 연중 2,3차 징수하는 권신들의 학정에 반대하여 조반은 관직에서 물러났다. 심지어 권신들의 家奴(집종)까지 농민의 전답을 마구 갈취하는 족당들의 행패를 보고 조반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私兵을 이끌고 역신 廉興邦의 집종 李光을 참수하고 그 집에 불을 지르니 逆臣들은 조반을 역적으로 몰아 母親과 婦人을 순군옥에 가두고 조반에게 모진 고문을 가하였으나 완강한 어조로 民賊인 너희를 제거해야 하거늘 내가 어찌 반역이냐며 굽히지 않았다.

충신 조반을 구출하고자 최영 장군이 王命을 받아들고 賊臣일당들을 숙청하고 농민의 土地를 되돌려주게 했다. 급기야 李成桂가 혁명을 일으키고 趙胖을 국호 주청사로 明나라에 보내 明太祖로부터 朝鮮이란 국호를 승낙받아 환국하니 수많은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개성에 이르자 李太祖는 직접 百官을 거느리고 宣義門 밖까지 영접하였다. 李太祖는 즉시 大提學 韓尙質을 明나라에 보내 국호 인준체결을 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趙胖을 開國功臣 또는 復興君에 封하고 正憲大夫 知中樞院事 都評議司使에 이르다. 公이 卒하니 나라에서는 不遷之位로 祭享을 모시도록 했다.

(健元陵神道碑文 및 太祖大王誌文에 趙胖의 國號奏請使記錄)


조선시대(朝鮮時代)의 인물(人物)

조서로(趙瑞老) 太宗5년 장원(壯元) 사헌부지평 승정원도승지

조서강(趙瑞康) 字:경중(敬仲), 號:경은당(耕隱堂). 태조14년 장원 태종실록편찬 사헌부장령(掌令) 집현전집의(執義) 중추원사 도승지 집현전부제학(集賢殿副提學) 이조참판(吏曹參判) 墓:仁川直轄市有形文化財 第6號

서안(趙瑞安) 諡號:평숙(平肅). 文科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병조참판(兵曹參判) 황해도․평안도․함경도 관찰사

조림(趙 琳) 諡號:강소(康昭). 한양원수 밀직사사 순충분의익재공신 보국숭록대부

조당(趙 璫) 병조판서(兵曹判書) 銀川君

조기(趙 琦) 諡號:충의(忠懿), 추충협찬개국공신

조서(趙 瑞) 태종조 문과 병조참의

조말통(趙末通) 경기수군절도사

조첨(趙 添) 전주진관 병마절도위(兵馬節度衛)

조완벽(趙完璧) 字:重國, 아산․천안․풍기․합천․익산 군수 승정원도승지(承政院都承旨)

조욱(趙 頊) 字:明寶. 통정대부 사복야 正

조경남(趙敬男) 임진왜란 때 순절한 칠백의사

조우길(趙于吉) 號:栗原. 도절제사(都節制使)

조환(趙 環) 號:象山. 강화․선산부사 라주목사

조순달(趙順達) 號:石淵. 文科 사헌부대사헌

조세우(趙世佑) 號:묵포(黙浦). 어모장군 충무위부사직

조응지(趙應祉) 字:자수(子綏), 號:坎菴. 자헌대부


壬辰倭亂 義兵將 趙重峯先生

조헌(趙 憲) 字:汝式, 아호:重峯, 諡號:文烈. 先生은 50平生을 나라와 民族을 위해 살면서 앞을 보는 先見之明이 있어 倭敵이 침입할 것을 豫知하고 10여 차례의 상소문으로 두 번의 유배 파직 또는 사직을 당하는 험난한 벼슬살이를 하는 동안 壬辰倭亂을 맞게 되어 의병을 모집하여 왜적과 싸우다 드디어 生과 死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