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한양조씨,한양조씨시조,조지수,한양조씨조상인물,한양조씨유래

작성일 : 2018-01-02 13:29 수정일 : 2018-01-02 22:48

한양조씨의 연원

한양조씨 본원록에 의하면 조씨는 중국 황하문명을 발전시킨 오제 중의 하나인 전제(전제는 전욱 고양씨이다. 황제의 손자로서 20세에 임금의 자리에 올라 처음 고양의 땅에 나라를 일으켜 이 지명을 성씨로 삼은 것이다)의 뒤이며 백익의 후손이라고 되어 있다.

백익은 비렴이라는 분을 조상으로 삼고 아들은 계인데 그 후에 조부라는 분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백익은 순제의 신하로서 우와 더불어 홍수를 다스린 공로로 영씨라는 성을 순제로 부터 하사받았다고 한다. 그 후에 백익의 후손인 조부가 서주의 5대 목왕 55년에 서를 정벌한 공으로 조성에 봉하게 됨으로 그 지명을 따서 조씨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부터 조씨성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뒤에 진나라 세경이 되었는데 그 후 8세인 조적에 이르러 진나라 6개 세경 중 한, , 3가가 진나라 땅을 나누어 갖는 형세가 됨으로 기원전 403년 주나라 32대 위열왕의 명으로 제후가 되어 대대로 나라를 전하다가 진나라에게 멸망되었다. 그 후 후손들이 조씨를 성으로 삼아 중국 각지에 흩어져 살다가 5(후양, 후당, 후진, 후한, 후주<907959>)때에 이르러 홍은이라는 이가 나와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그 차자가 960년에 송나라를 일으킨 태조 조광윤이다. 그 후 송나라는 1127년에 김나라에 의해 패망하였고 나머지 세력이 남쪽으로 쫒겨 내려와 남송을 세웠는데 이전의 송을 북송이라 한다.

남송은 그 후 1279년 몽고군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한양조씨 시조 조지수는 송태조의 후예라고 전하여 오는 바 남송때에 우리나라에 건너왔는데 그 년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한양조씨는 시조 조지수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린지 800여년이 되는데 그동안 정치․사회․문화․학문등 각 분야에서 수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국가와 사회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한양조씨는 2000년 기준 우리나라 본관별 성씨 4,000여개 중 26위를 차지하는 명문 거족으로서 그 인구수가 30 8천명에 이르고 있다.

- 한양조씨 세계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