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0(고려 우왕 6)~1436(세종 18). 자(字)는 청경(淸卿), 호(號)는 청향당(淸香堂)․학천(鶴川), 시호(諡號)는 문도(文度), 소종(紹宗)의 아들. 어려서부터 경사(經史)에 통달하여 이름을 떨치다가 1393년(태조 2) 진사(進士)가 되고, 1401년(태종 1)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급제, 사재직장(司宰直長)에 보직, 좌언정(左言正)․이조(吏曹) 좌랑(佐郞)․예조(禮曹) 정랑(正郞)을 역임, 1409년 이조정랑(吏曹正郞)이 되었다. 1414년 지승문원사(知承文院事)로 노비변정도감(奴婢辨定都監)이 설치되자 제십방(第十房)의 담당자로서 신속 공정히 판결했고, 1419년 우부대언(右副代言), 1422년(세종 4) 병조 참의(兵曹參議), 이어 동지우군총제(同知右軍摠制)․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1424년 집현전(集賢殿) 부제학(副提學)으로서 류 관(柳 觀) 등과 함께 정도전(鄭道傳)의 고려사(高麗史)를 수교(修交), 1427년 예문관(藝文館) 제학(提學)으로 척불(斥佛)을 건의했으며, 1432년 세종의 명을 받고 신 장(申 檣)과 함께 팔도 지리지(八道地理誌)를 편찬했다. 1433년 예문관(藝文館) 제학(提學), 이어 중추원사(中樞院使) 겸 성균관(成均館) 대사성(大司成)이 되어 대제학(大提學) 정 초(庭 招)와 함께 사대문서(事大文書)를 감장(監掌)했고, 1434년 집현전(集賢殿)에서 왕명으로「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의 찬집(纂輯)을 맡았으며, 병조(兵曹) 판서(判書)․예문관(藝文館) 대제학(大提學)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