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1-17 10:02 수정일 : 2017-11-17 10:05
1352(恭愍王 1)~1420(世宗 2)초명은경(敬), 자는 태화(太和), 호는 선암 (仙庵),시호는 문희(文僖). 1371년(恭愍王 20) 문과(文科)에 급제하였으며, 성균학유 (成均學諭)가 되고 박사(博士). 문하주서(門下注書)를 역임하였다.
특히 이성계(李成桂)와 절친하여 측근에서 항상 학문을 강론해 주었다. 1376년(禑王 2)통례문지후(通禮門祗侯). 전공좌랑(典工佐郞). 예의정랑(禮儀正郞). 군부정 랑(軍簿正郞)을 거쳐 1389년(恭讓王 1) 성균사예(成均司藝)를 역임했고, 이어 호조의랑(戶 曹議郞). 성균제주(成均祭酒)를 역임했다. 1392년 조선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공신(開國功 臣)2등으로 대사성(大司成)에 승진했고, 그 후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좌부승지(左副承旨). 충추원부사(中樞院副使)등을 지내고 옥천군(玉川君)에 봉해졌으며 첨서중추원사(簽書中樞院 事)가 되었다. 1401년(太宗 1)승녕부윤(承寧府尹)이 되고 왕자 난을 거쳐 태종이 왕위에 오르자 太祖(李成桂)가 소요산(逍遙散)에 들어 갔을 때 태종의 간곡한 청을받고 太祖를 찾아가 귀경을 권유 하기도 하였다.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세자우부빈객(世子右副賓客) 등을 역임하였다. 1408년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로 태조가 죽자 수묘관(守墓官)이 되어 3년 동안 묘를 지켰다. 1410년 길주도찰리사(吉州道察理使)로 나갔다가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 등을 지낸 뒤 1413년 세자 이사(世子貳師) 가 되고, 1416년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진봉(進封), 1420년에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1420년 12월 9일 졸(卒)하니 나라에서 환관(宦官)을 보내어 백미(白米)와 콩을 후부(厚賻)하여 1등공신(一等功臣)의 예(禮)로 후장(厚葬)하고,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하였으며. 명부조묘(命不祧廟)하였으며 그를 칭송하기를 당(唐)나라 누사덕(婁師德)에 비유하였다. 태종(太宗)이 공심일시(公心一視)라는 어필(御筆)을 하사하고 부(父). 조(祖). 증조(曾祖)3대 (3代)에 벼슬을 추증(追贈)하였으며, 경북 칠곡군 북삼면 숭양리에 영정각(影幀閣)및 어필각 (御筆閣)을 세워 봉안하다가 1990년10월 서울 상일동 해천재(蟹川齋)에 이봉(移奉)하여 모시고 있으며 문희공신도비1기.문관석2기.묘갈1기. 망주석2기와 보호구역4필지19,651m2를 서울시유형문화재 제96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