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字)는 응룡(應龍). 그를 잉태할 때 당시 순창 군수(淳昌郡守) 이 운(李 韻)의 꿈에 5색이 영롱한 서운(瑞雲)이 그 집을 가리우고 그 속에서 황룡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하여 이름을 몽진(夢辰)이라 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글재주가 뛰어나 16세 때 향리(鄕吏)가 방립(方笠)을 쓰지 않도록 하는 <탈향리방립문(脫鄕吏方笠文)>이라는 소문(疏文)을 올려 향리(鄕吏)가 방립쓰는 제도를 폐지(廢止)시켰다. 고경명(高敬命)이 그의 문장이 뛰어남을 보고 불러다가 곁에 두고 귀여워하며 시구(詩句)를 수응수답하였는데 발바닥에 검정사마귀 열두 개가 있는 것을 보고 이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고 감탄했다 한다. 1553년(명종 8) 친경별시(親耕別試)에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1556년(명종 11) 중시(重試)에 병과(丙科)로, 1559년 중시(中試)에 각각 급제하여 음성(陰城)․청하(淸河)․운산(雲山)․황간(黃澗)의 현감(縣監)과 적용 판관(籍用判官)․봉상시 판관(奉商寺判官) 등을 지내고, 충청 도사(忠淸都事)․형조(刑曹)와 예조(禮曹)의 좌랑(佐郞), 병조 정랑(兵曹正郞)을 역임했다. 음성(陰城)에 유애비(遺愛碑)와 청하(淸河)에 청백비(淸白碑)가 세워졌다.